온라인 읽기 모임에 사흘간 27명 모이기도
"혼자였으면 시작 못했을 것, 든든한 느낌"
"아. 아. 다들 들리시나요? 오늘은 채식주의자를 낭독해보겠습니다."
지난 13일 한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엔 '보이스룸'이 진행 중이라는 알람이 연신 떴다. 보이스룸은 음성으로 하는 단체 카카오톡 채팅방이다. 진행자 포함 10명까지 '스피커'가 될 수 있다. 이 채팅방에서 채식주의자를 낭독한 닉네임 '파이'는 "낭독이 오글거려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라며 "책이 워낙 강렬해 영화 보듯 읽는 동안 머릿속으로 장면이 쭉쭉 떠올랐다"고 밝혔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신개념 독서모임'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 보이스룸이다. '독서와 토론 : 노벨문학상 한강 작가 작품 읽기'라는 오픈채팅방에는 15일 기준 80명이 모였다. 이름도 신상도 모르지만 한강 작품을 읽고 자유롭게 소감을 나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모임의 이유는 충분했다. 한강이 쓴 책에 나오는 유명한 문장이나 한강의 2004년 서울디지털대 문예창작과 수업 영상을 서로 공유하는 채팅방도 있다.
인터넷 카페와 카카오톡방을 함께 활용한 모임도 생겼다. '다독모임' 진행자 문화라(54)씨는 이번달부터 내년 7월까지 한 달에 한 권씩 한강 작품을 읽고 후기를 카페에 공유, 카카오톡방에 감상을 나누는 모임을 블로그를 통해 모집했다. 11일부터 사흘간 27명이 신청해 예상보다 일찍 모집을 마감했다. 문씨는 "2016년에도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를 회원들끼리 읽고 대담 형식으로 팟캐스트에 녹음하고 책을 펴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책을 '함께' 읽으면 없던 용기도 생긴다고 말한다. 문씨는 "한강 작가 소설이 무겁고 어둡다는 말에 도전 못 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일종의 '책 러닝메이트'처럼 사람들과 함께 읽으면 어떨까 싶었다"고 말했다. 이 모임에 참여한 '마인드풀'이란 닉네임의 A(56)씨 역시 "혼자였으면 책을 집어들 생각을 못 했을 것"이라며 "사람들과 같이 읽으면 내가 주목한 문장을 다른 이도 같이 주목하고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고 할 때 흐뭇하고 든든한 동지를 얻은 느낌이다"고 전했다.
적지 않은 돈을 지출하는 이들도 있다. 독서 모임 커뮤니티 '트레바리'는 오는 23일 '기다렸어요 노벨문학상 수상 한강'이라는 이름으로 4권의 책을 읽는 모임을 열 예정이다. 4개월에 25만 원을 지불해야 하는데 이날 기준 43명이 '찜(사전 예약과 비슷한 개념)'을 해놨다. 26일에는 '한강에서 만나요'라는 모임이 같은 가격으로 개최된다. 정원이 10~17명인데 벌써 56명이 찜을 해뒀다.
전문가들은 번거롭게 물리적인 공간을 마련하지 않고도 여럿이 노벨상 수상자의 작품을 읽고 싶은 욕구와 젊은 세대들에게 친숙한 디지털 방식이 결합하면서 이런 문화가 만들어졌다고 진단한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온라인을 통해 자신의 기호나 취향뿐만 아니라 책 감상과 같은 사적인 것을 공유하고 싶어 하는 공동체적 특성이 드러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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