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계에 발목 잡힌 밸류업]
국내와 달리 美·日 기업 밸류업 '활발'
주가 부양 등 성과 내야 RSU 보상 지급
국내 일부 기업 도입... '승계 악용' 비판 직면
미국 애플의 팀 쿡 최고경영자(CEO)가 지난해 받은 연봉은 6,320만 달러(약 870억 원)에 달했다. 이 중 기본급은 300만 달러에 그친다. 나머지는 '회사가 제시한 조건을 달성한 대가'로 받은 애플 주식이다. 조건이 세세하게 공개되지 않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주가 상승률이다. 지난해 50% 이상 급등하며 사상 최고가를 갈아 치운 애플 주가 덕에 쿡 CEO는 11만 주에 달하는 주식을 받았고 주식 가치도 그만큼 올랐다. 장기적인 기업가치 상승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처럼 미국에서는 CEO가 주가를 올려야 할 명분이 뚜렷하게 주어진다. 승계 문제가 걸린 국내 재벌 기업과 달리 미국과 일본에서 자체적인 기업가치 제고(밸류업) 노력이 활발한 이유다. 미국과 일본 기업의 '직업' CEO는 주주를 만족시켜야만 장기적으로 자리를 지키면서 더 높은 연봉을 보장받을 수 있다.
보상 방법은 성과를 조건으로 주식을 무상 제공하는 '양도제한조건부 주식(RSU)'이 대세다. 스톡옵션이 추후 주식을 저렴하게 살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것이라면 RSU는 일정 조건하에 양도 제한이 해제되는 주식을 무상으로 주는 방식이다. 여기서 조건은 보통 근속 및 성과 달성이다. 예컨대 4년간 매해 100주씩 주식을 무상으로 주는 대신 연간 주가 상승폭이 3% 미만일 경우 주식 교부가 취소되는 식이다.
2000년대 초반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알파벳 등 대기업이 적극 도입하기 시작한 RSU는 이후 유럽에서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나 SAP 등이, 최근에는 일본 도요타·소니 등이 적극 받아들이고 있다. 양희동 이화여대 경영대학 교수가 2017~2023년 미국 증시 상장 기업 901곳을 대상으로 RSU 도입 현황을 분석한 결과, 이 중 78.7%가 이 기간 지속적으로 RSU를 지급했다.
특히 RSU 도입 기업은 미도입 기업에 비해 매출과 영업이익, 시가총액 면에서 더 높은 성장을 기록했다. 양 교수는 "RSU는 스톡옵션에 비해 직원이 회사에 오래 남아 있도록 하는 유인을 제공한다"며 "밸류업의 궁극적 목표를 고려하면 RSU의 적극적 도입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에도 RSU 제도를 도입하는 대기업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한화와 두산, 네이버가 대표적이다. 다만 재벌 체제 아래에선 RSU 제도가 경영권 승계에 악용된다는 비판을 받을 여지가 있다는 점이 문제로 꼽힌다.
양 교수는 국내 기업이 밸류업을 위해 RSU를 적극 도입하되, 우려되는 지점은 규제가 아닌 이사회 독립성 강화 및 주주총회 영향력 강화 등의 방식으로 최소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질적으로 회사에 대주주 또는 CEO가 기여를 하고 있는지, 그에 걸맞은 수준의 주식 보상이 부여되는지를 각 회사 이사회와 주주가 판단해야 한다는 얘기다.
양 교수는 "경영진 보수 결정에 주주가 참여해 적정 여부를 판단하는 '세이 온 페이(Say On Pay)' 제도 등을 미국·영국처럼 적극적으로 도입하거나, 주총에서 이사회 추천까지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며 "결국 기업 밸류업을 가장 원하는 주체는 주주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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