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핵연료는 원자력발전에서 핵분열을 일으켜 에너지를 방출하도록 가공된 소재다. 보통 농축우라늄을 많이 쓴다. 그런데 농축우라늄 핵연료는 경수로 방식 원자로 기준 3년 정도가 지나면 효용이 떨어져 새 연료로 대체해야 한다. 이때 교체된 핵연료봉 내 핵연료를 사용 후 핵연료라고 한다. 사용 후 핵연료는 현재 2가지 방식으로 관리된다. 하나는 폐기를 결정해 원자력안전법상 ‘고준위 방사성폐기물’로 관리하고, 다른 하나는 재처리하는 것이다.
▦ 폐기물로 관리하는 경우, 일단 원전 주변에 중간저장시설을 구축해 임시보관 후, 궁극적으론 지하 500~1,000m 깊이에 봉인 매장할 수 있는 처분시설을 따로 구축해 인간 생활권으로부터 영구격리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아직 영구 처분시설이 없이 중간저장시설에 2만 톤 정도의 폐기물을 임시보관하고 있으나, 2030년부터 저장용량이 한계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 따라서 폐기물 영구 처분시설 구축이 시급한 상황이다.
▦ 재처리는 사용 후 핵연료에서 플루토늄 등을 추출해 핵연료로 재사용하는 방식이다. 핵연료 효율을 높이고, 폐기물도 100분의 1 수준으로 줄일 수 있다. 다만 추출된 플루토늄 등은 핵무기 제조에도 쓸 수 있기 때문에 국제적으론 몇몇 선진국을 제외하곤 재처리가 규제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한미원자력협정’에 따라 재처리를 못 하고 있다. 하지만 같은 ‘핵확산금지조약'(NPT) 회원국으로서 일본이 1988년 ‘미일원자력협정’ 개정으로 재처리 권한을 확보한 걸 감안하면 우리도 상응하는 권한을 확보해야 마땅하다.
▦ NPT 4조는 ‘NPT 회원국들은 평화적 목적을 위한 핵 에너지의 연구ㆍ개발, 생산, 사용에 대한 권리가 침해돼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동안 재처리 권한을 고집하기 어려웠던 건 북한 핵개발 이슈와 맞물린 지정학적 사정 때문이었다. 하지만 북한이 핵보유국으로 인정되기에 이른 지금, 재처리 권한 제한은 더 이상 타당하지 않다. 최근 조현동 주미대사가 재처리 권한 확보 의지를 거론한 데엔 핵무기 문제 외에, 폐기물 임시보관 한계 등 절실한 현실적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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