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세상]
모이라 와이글 '사랑은 노동'
"결혼이 연애 시장에 뛰어든 모두가 바라는 장기 계약직이라면, 데이트는 가장 불안정한 노동 형태인 무급 인턴십이다. 좋은 인상을 남긴다면 공짜 점심 한 끼쯤은 얻어먹을 수 있을지 모른다."
모이라 와이글 미국 하버드대 비교문학과 교수가 쓴 '사랑은 노동'은 사랑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여타의 책과 다른 점은 "모든 사랑 행위는 곧 '노동(labor)'"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자발적 행동으로 여겨지는 데이트가 실은 발명된 노동"이라는 도발적인 결론을 먼저 내린 뒤 약 100년 동안의 데이트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190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에 걸친 데이트의 역사는 영화, 소설, 역사 문헌, 학술 비평을 넘나들며 흥미진진한 장면으로 전개된다. 가령 데이트가 '생소한 것'이었던 20세기 초엔 경찰이 낯선 사람과 데이트를 하는 여성을 '성매매' 혐의로 체포했다. 요즘은 온라인 데이팅 플랫폼에서, 오프라인에서 만나 자연스레 만남을 이어간다. 이를 통해 데이트가 본질적으로 사회의 노동, 생산, 소비, 교육, 문화로부터 구성된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한편, 현대사회가 강요하는 유일한 사랑의 모습(일부일처제, 이성애, 결혼과 출산 지향적 사랑)을 비판적으로 드러낸다. 저자는 '데이트의 족적'에 빗대어 자신이 찾은 '사랑 노동'의 의미를 다음처럼 전한다. "사랑이 일이라는 사실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노동은 우리가 만들 수 있다. 사랑을 위해 '노력하는(labor)' 삶보다 나은 삶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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