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기자회견 고사한 한강의 과거 '말'들
줄곧 침묵으로 말해 온 '내향성 작가' 한강
"찻숟가락만큼이라도"...세계 향한 책임감
한강 작가는 ‘채식주의자’로 세계적인 문학상인 영국 맨부커상을 받은 이후 2016년 5월 한국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이 자리가 끝나면 다시 제 방으로 돌아가, 지금까지 그래왔듯 책으로 이야기할 것입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고 나서도 한강은 '자기 방'을 조용히 지키고 있다. 과거 언론 인터뷰, 수상소감, 강연, 기고 등 책 바깥에서 해온 그의 말을 보면, 그는 '오직 쓰기'를 작가의 윤리와 책무로 여기는 듯하다.
'소년이 온다' 출간 때는 "뭐든지 하고 싶다"
한강이 언론에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건 단편소설 ‘몽고반점’으로 이상문학상을 탄 2005년이었다. 당시 수상소감에서도 한강은 ‘침묵과 절제’를 이야기했다. “침묵과 절제 속에서 나무들의 흰 뼈 같은 정갈한 아름다움을 향해 나아가고 싶었다.” 소설 ‘흰’(2016)의 초판에는 작가의 말조차 싣지 않았다. “소설 전체가 다 작가의 말”이라는 의미에서였다.
문학잡지 악스트·Axt의 2022년 1/2월호 인터뷰에선 MBTI 성격유형검사와 관련해 "(내가) 'I'(내향형)인 걸 모를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는 말을 들었다는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방 밖으로 나와 인터뷰, 강연 등을 적극적으로 한 건 2014년 여섯 번째 장편소설로 광주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소년이 온다’를 냈을 때였다. “이 소설을 알리고 싶어서 뭐든지 하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한강은 당시 한국일보에 “제가 20, 30대 때만 해도 광주 이야기가 충분히 재현됐다는 판단에 저까지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쓰기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다”고 말했다.
"찻숟가락 만큼이라도 뭔가 해야" 무겁게 느끼는 문학의 책임
“20세기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상처를 남긴 시간”(2019년 예테보리 도서전 발언)이라고 한강은 본다. 그는 문학을 통해 상처를 기억하고 치유할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 악스트 인터뷰에서 “기후위기에 대한 관심이 생겨서 좀 공부했다"며 "찻숟가락 하나만큼이라도 뭔가 해야 하지 않나”고 했다.
한강은 문학 밖에서 말해야 할 때라는 판단이 서면 주저하지 않았다. 2017년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미국이 전쟁을 말할 때 한국은 몸서리친다’는 제목의 글을 보냈다.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말폭탄을 주고받아 전쟁 위기가 커지던 때였다. 그는 전쟁을 위협하며 사람을 보지 않는 트럼프를 비판했다. “현실의 전쟁이 될지도 모르는, 점차 고조되는 말의 전쟁이 우리는 두렵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기 때문이다. (...) 이 반도의 남쪽에는 5,000만 명이 살고 있기 때문이며, 그중 유치원생이 70만 명이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NYT의 기고 의뢰를 한 차례 사양했다가 '할 말'이 생긴 순간 글을 보내겠다고 먼저 연락했다.
"내가 좀 다른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던 14년 전
“마치고 나니까 내가 좀 다른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 듭니다.” 2010년 막 불혹에 들어선 한강은 네 번째 장편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를 내고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늘의 명을 안다는 나이인 지천명을 훌쩍 넘어선 그는 “나는 시간을 들여 계속 글을 쓸 것이고,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16일 스웨덴 공영SVT방송 인터뷰)이라고 했다.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놀라운 '사건'이 벌어졌으나 '한강답게' 그저 쓰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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