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수사하던 경사 압수물 훔쳐
관리자가 창고에서 3억 빼돌린 사례도
사건종결까지 입출고 편한 구조적 문제
"우리는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오직 양심에 따라 법을 집행하는 공정한 경찰이다."
신임 경찰관들은 임용식에서 다섯 개 항목으로 구성된 '경찰헌장'을 낭독하며 오직 국민만을 위한 공정한 법의 수호자가 될 것을 다짐한다. 그러나 최근 국민의 믿음을 저버리고, 단속 도중 압수된 큰돈에 눈멀어 범죄수익금 등에 손을 대는 '양심 불량' 경찰관들이 잇따르고 있다. 경찰은 부랴부랴 압수물 관리 현황에 대한 전수조사에 착수했다.
17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용산경찰서는 전날 오후 같은 경찰서 강력팀 소속 A 경사를 긴급체포했다. A 경사는 자신이 수사한 보이스피싱 사건에서 압수한 금품을 보관창고에 넣었다가 출고한 뒤, 다시 창고에 입고하지 않은 혐의를 받는다. 그는 출고한 금품을 창고에 다시 넣는 과정에서 범행이 발각됐는데, 빼돌린 금액은 억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바로 전날에는 강남경찰서 B 경장이 압수물 보관창고에서 3억 원대 금품을 빼돌렸다가 덜미를 잡혔다. B 경장은 올해 초까지 수사과에서 압수물 관리 업무를 담당했는데, 불법도박 사건으로 압수된 현금 등을 수차례에 걸쳐 횡령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12월에는 완도경찰서 소속 C 경위가 증거물보관실에 몰래 들어가 현금 2,500여만 원을 훔친 혐의로 붙잡혔다. 훔친 돈은 본인이 수사했던 불법도박 사건에서 압수한 금품이었다.
이렇게 사고가 연달아 터지는 배경엔 경찰의 부실한 압수물 관리체계가 있다. 현재 경찰이 수사 과정에서 획득한 증거물과 압수품은 각 시·도청과 경찰서의 수사지원부서에서 통합으로 관리하고 있다. 경찰청 범죄수사규칙에 따르면, 경찰은 압수물에 사건명과 피의자 성명을 비롯한 압수물 번호를 기입하고 압수목록에 기재해 증거물·압수물 관리창고에 보관해야 한다.
문제는 이렇게 한 번 창고에 들어간 압수물은 수사가 종결될 때까지 입·출고가 자유롭다는 데 있다. 통합관리시스템에 기록만 하면 압수물을 창고에서 출고할 수 있고, 이후 재입고 기한도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검찰 송치로 압수물까지 송치해야 하는 경우 △불송치 결정으로 압수물 환부 등 처분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경우 등이 아니면, 압수물을 창고에 다시 돌려놓지 않아도 문제 될 것이 없다. C 경위의 경우에도 사건이 검찰에 송치되는 과정에서야 압수물이 비어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범행이 발각됐다.
특히 현금과 귀금속 등 중요 금품 압수물은 별도로 지정된 보관담당자가 금고에 보관해야 하는데, 공간 문제로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압수된 현금 등이 많아 전액 금고에 보관이 어려울 경우 관리 방법에 대한 규정이 부재한 탓이다.
보통 압수물 관리를 보관담당자 한 명이 맡는 것도 B 경장처럼 도덕적 해이의 가능성을 부추길 수 있다. 일선 경찰서의 경우, 수사지원팀 직원이 보관담당자로 지정되는데 해당 직원의 자의적 입출고 등 비위를 감시할 수 있는 수단이 사실상 전무하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이달 18일부터 25일까지 통합 증거물 관리현황에 대한 전수조사와 보관 규정 등에 대한 점검에 착수하기로 했다. 국수본 관계자는 "압수된 현금을 중점 점검하고 관리 절차 등에 보완할 부분은 없는지 꼼꼼하게 점검해 개선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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