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호 전 서울청장 등 1심서 모두 무죄
"업무상 과실, 인과관계 죄 물을 수 없어"
유족들 "사법부가 또 면죄부 줬다" 분노
'이태원 핼러윈 참사'와 관련해 당시 서울 지역 치안 최고책임자에게 부실 대응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2부(부장 권성수)는 17일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를 받는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김 전 청장은 참사 대응으로 기소된 경찰 간부 중 최고위직이다. 당일 당직 근무자였던 류미진 전 서울청 상황관리관(총경)과 정모 전 112상황팀장(경정)도 무죄를 받았다. 참사 발생 2년 만에 내려진 무죄 판결에 유족들은 "사법부가 면죄부를 주면 대한민국 공권력은 국민을 위해서 대체 뭘 할 수 있느냐"며 울분을 토했다.
재판부가 형법상 유무죄를 따진 기준은 ①상황 발생 전과 당일, 이후에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은 업무상 과실이 있는지 ②그 과실이 사상자를 늘렸거나 이 사건이 발생하게 된 인과관계가 있는지였다.
법원은 둘 다 죄를 물을 수 없다고 했다. 김 전 청장이 (사고 전 보고받은) 보고서와 이임재 당시 용산경찰서장으로부터 받은 문자메시지를 종합할 때 인파 집중을 넘어 사고 발생 우려가 있어 대비가 필요하다는 정보를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이유에서다. 또 "(김 전 청장이) 두 차례나 핼러윈 대책 마련을 지시했음에도 서울청 경비과는 경비 수요가 없다고 했고, 용산서도 자체 경력으로 인파 관리가 가능한 것처럼 보고했다"며 관리 감독 책임도 인정하지 않았다. 김 전 청장이 사고 인지 후 경찰기동대를 가용하라고 지시한 점으로 볼 때 업무과실로 사건이 확대됐다고도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류 전 관리관에 대해선 상황실을 이석한 상태에서 대체할 조치도 마련하지 않아 의무를 다하지 않았지만, 과실이 없었다면 사고가 확대되지 않았을 거라 단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실무책임자였던 정 전 팀장 역시 현장 경찰관이 종결처리로 보고한 점 등으로 미뤄볼 때 다시 확인이나 조치할 의무를 부과하기 힘들다고 했다. 다만 재판부는 "관련 규정과 매뉴얼이 미흡하고 재난 예방 관련 경찰 조직 전반의 안일한 인식이나 문화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며 처벌과 별개로 책임자들에 대한 도의적 책임 등을 지적했다.
아직 상급심 판단이 남긴 했지만 이번 판결로 사전 안전관리 대책 미비(지자체), 기동대 미배치(경찰 수뇌부), 늑장 구조(소방) 등 기관별 책임자의 여러 과실이 모여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는 '공동정범' 법리는 사실상 모두 깨졌다. 소방 책임자는 검찰이 기소도 못 했고 얼마 전 박희영 용산구청장도 1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이임재 전 용산서장과 당시 112치안종합상황실장, 치안종합상황실 팀장에게만 유죄가 내려져 결과적으로 현장 경찰들만 법적 책임을 지는 모양새가 됐다.
무죄 선고에 법정에 있던 유족들은 "이게 인재지 어떻게 매뉴얼 탓이냐" "국민이 누굴 믿어야 하느냐"며 분노했다. "판사도 반성하라. 부모 형제가 다 죽었다"라는 고함에 판사가 선고를 머뭇거리기도 했다. 유족들을 대리하는 백민 변호사는 "법이 힘 있는 사람에겐 약해지고 힘없는 사람한테는 가혹하다는 점이 나타난 것"이라며 검찰의 즉각 항소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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