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암 발생 70%가 만성 B형간염에서 비롯
간염 바이러스 수치 따라 발암 위험 달라져
"간염 치료 기준 바꾸면 간암 줄일 수 있어"
술을 지나치게 마시는 건 간 건강에 치명적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위험한 것이 만성 B형간염이다. 만성 B형간염은 국내 간암 발생 원인의 70%를 차지한다. B형간염 바이러스는 간세포를 서서히 손상시키고 간경변증·간암 등의 합병증을 불러온다. 현재는 간수치가 크게 높아졌거나 간경화가 진행된 경우에만 항바이러스제 치료를 받도록 국민건강보험 급여 기준이 제한돼 있어 국내 환자의 일부만 치료를 받는 상황이다.
임영석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간수치‧간경화 여부와 상관없이 B형간염 치료를 시작할 때부터 바이러스 수치를 적용하도록 기준을 바꾸면 국내에서 향후 15년 동안 간암 환자를 4만 명 줄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런 전망의 근거는 임 교수가 최근 미국내과의사협회 학술지인 ‘내과학연보’에 발표한 연구 결과다.
임 교수 연구진은 국내에서 간수치 상승이나 간경화가 없는 B형간염 환자 6,949명의 데이터를 활용, 간암 발생 위험 예측모델을 개발했다. 그 결과 간수치가 정상 범위에 해당되고 간경화가 없는 국내 B형간염 환자의 경우, 혈중 간염 바이러스 수치가 중간 수준(혈액 1㎖당 100만 단위)일 때 간암 위험이 최대 8배까지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만, 홍콩 등 동일 조건의 다국적 B형간염 환자를 대상으로 한 분석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간암 발생 위험은 혈액 내 간염 바이러스 수치에 따라 달라졌다. 바이러스 수치가 10만 단위 미만으로 적거나, 1억 단위 이상으로 많은 환자에게선 오히려 간암 발생 위험이 낮아지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전까지 학계에선 간염 바이러스 수치에 비례해 간암 발생 위험이 증가하고, 간염 치료를 시작하면 바이러스 수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바이러스 수치와 간암 발생 위험 간의 연관성이 없다고 여겨왔다. 하지만 이번 연구 결과는 간수치가 정상이라도 바이러스 수치를 기준으로 간염 치료를 일찍 시작한다면 간암 발생 규모 자체를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임 교수는 “간암은 국내 중년 암 사망률 1위로 매년 1만2,000여 명의 환자가 발생하고 있지만 주원인인 B형간염의 치료 기준이 엄격하다보니 간염 환자의 20%만 항바이러스제 처방을 받고 있다”며 “이번에 개발한 예측 모델을 활용하면 B형간염 환자의 간암 발생 위험을 전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근거가 부족해 치료 사각지대에 놓였던 만성 B형간염 환자에게도 항바이러스제 치료 급여가 적용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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