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법·실종아동법 따라 부모에게 연락 의무
72시간 피해 사실 털어놓기엔 턱없이 부족
실종아동법 개정·입소 동의권 제도 등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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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온' 등 시민단체와 가정 밖 청소년들을 지원하는 현장 활동가들이 22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발언하고 있다. 최현빈 기자
"친구 집, 거리를 1년 내내 전전하다 도움을 청해온 청소년에게 쉼터 입소를 설득했지만, 그 아이는 '못 간다'고 했습니다. 부모님에게 연락이 가는 게 두려워서 그렇다고 했습니다."
가정 밖 청소년들을 지원하는 활동가와 청소년 당사자, 시민단체 등이 22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 모여 '여성가족부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집을 떠난 청소년의 거처가 되어줄 청소년 쉼터의 문턱을 낮춰달라고 촉구하기 위해서다. 여가부가 운영하는 청소년 쉼터는 만 9~24세 청소년이 입소 신청 후 상담받으면 들어갈 수 있다. 최대 4년까지 머물 수 있다.
"부모한테 연락한대" 쉼터 꺼리는 아이들

정부서울청사 내 여성가족부의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쉼터에 입소하려면 부모에게 연락을 하도록 규정한 현행법과 여가부 운영 지침을 바꾸자고 주장했다.
민법 제914조(미성년 자녀는 친권자가 지정한 장소에 거주)와 실종아동법 제6조(청소년 보호시설장 또는 종사자는 가정 밖 청소년이 실종아동임을 알게 됐을 땐 즉각 경찰에 신고)에 따라 쉼터가 입소 사실을 부모에게 알리는 건 법적 의무사항이다.
문제는 부모의 폭력이나 학대 등을 피해 집을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청소년들도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당연히 부모에게 연락하는 걸 두려워한다. 국현(활동명) 활동가는 "가정 밖 청소년에게 거리는 더 위험해 쉼터 등으로 연계하려고 해도 대부분 거부한다"면서 "쉼터에 가면 부모님에게 연락한다는 게 알려져 서로 가지 말라고 말리는 청소년들을 여러 명 만났다"고 전했다.
여가부도 대책을 마련해놓긴 했다. △가출 청소년이 보호자 연락에 동의하지 않아도 최대 72시간까지는 긴급 보호가 가능하고 △가정폭력이나 학대로 집을 나온 사실이 확인되면 부모에게 연락을 안 하는 걸 내부 방침으로 정해뒀다. 일단 받아주고, 피해 사실이 소명되거나 수사기관 신고를 거친 경우엔 가정으로부터 격리될 수 있게끔 만든 조치다.
쉼터 종사자도 허탈감... "법 개정" 목소리
그러나 한계는 뚜렷하다. 72시간이 생면부지 어른에게 학대 등 피해 사실을 털어놓기엔 턱없이 부족해서다. 이 같은 이유로 3년 전 쉼터 입소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고 지금은 청소년 인권 보장 단체에 속해 있는 모래(활동명·19) 활동가는 "처음 본 사람에게 가정폭력을 말하는 건 쉽지 않았다"면서 "피해자성을 검열하고 증명하라고 요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털어놨다. 아이들을 돌려보내야 하는 쉼터에서도 걱정이 많다. 변미혜 활동가는 "쉼터에서도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없다고 생각해 결국 '헬퍼'를 찾는 아이들이 많다"고 토로했다. 헬퍼는 가출 청소년에게 금전적 지원·주거지 등을 불법으로 제공하는 이들을 일컫는 말로 성범죄 등 피해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 위험하다.
전문가들은 일단 실종아동법을 현실에 맞게 손보자고 말한다. 권영실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는 "스스로 가정에서 나와 쉼터에 입소하고자 하는 청소년들의 경우 실종아동법 적용을 받지 않도록 예외 조항을 두는 등의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달 초 관련 보고서를 쓴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미국과 같은 '청소년 입소 동의권 제도'를 시행해 일정 연령(만 16세) 이상의 가출 청소년 당사자에게 입소 동의권을 부여하는 방법 △16세 미만 청소년의 보호자에겐 입소 사실을 고지하되 정확한 위치를 알리지 않는 방법 등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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