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원, 첫 전원합의체 공개변론]
24년간 법령개정 안 한 국가 책임 쟁점
"장애인은 온라인만 쓰라는 건가" 질책
장애인 접근권 관련 시행령을 24년 동안이나 개정하지 않은 국가에 책임을 묻는 소송 결론을 위해,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공개변론을 열고 의견을 수렴했다. 대법관들은 장애인 접근권 보장을 위해 국가가 어떤 노력을 했고, 책임을 다한 것인지를 캐물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이숙연 대법관)는 지체장애인 A씨 등 3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차별구제청구 등 소송 상고심에 대한 공개 변론을 23일 열었다. 조희대 대법원장 취임 이후 처음으로 열린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이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 등 많은 방청객이 참석한 이날 변론은 예정보다 긴 네 시간가량 이뤄졌다.
사건 발단은 1998년 제정된 구 장애인편의법 시행령이다. 당시 시행령은 지체장애인을 위한 편의 제공 의무를 부담하는 소규모 소매점의 범위를 '바닥면적 합계가 300㎡ 이상의 시설'로 정했다. 문제는 이 규정을 적용받는 소매점이 매우 적다는 점이다. 2019년 기준 전국 편의점 97%가 300㎡ 미만 시설이라 의무를 면제받았다. 해당 조문은 "국가가 장애인의 접근권을 방치했다"며 지체장애인 등이 2018년 4월 소송을 걸어 항소심이 진행 중인 2022년에서야 '바닥면적 합계 50㎡ 이상 1,000㎡ 미만 시설'로 개정됐다. 비현실적인 법령이 24년 만에 개정된 것이다.
쟁점은 △24년간 시행령을 개정하지 않은 국가의 부작위(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것)가 위법한지 △위법하다면 국가배상 책임이 성립하는지였다.
대법관들은 국가가 장애인의 접근권 보장을 위해 충분히 노력했는지, 그 책임과 의무를 묻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피고인 국가 측은 이날 변론에서 "시행령상 상당한 재량을 부여하고 있기 때문에 피고의 구체적 부작위 의무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그간 장애인 편의시설을 확충하기 위해 점진적으로, 양적·질적 측면에서 노력한 점도 강조했다.
조 대법원장은 실제 편의시설이 설치된 소매점 비율이 피고 측 주장을 인정하더라도 5%에 불과한 점을 지적하며 "동등하게 접근할 권리가 5%도 보장되지 않는다면 아예 (권리가) 없는 것과 같지 않으냐"라면서 "그런데도 시행령에서 할 바를 다 했다는 주장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온라인 구매나 활동보조 등 대체 수단이 있다"는 국가 주장에 대한 질책도 이어졌다. 오경미 대법관은 "(소매점 접근권을) 쉽게 대체될 수 있는 권리라고 말하는 것에 놀랐다"면서 "장애인에게 '집에만 있으면서 온라인으로 하라는 것'이고 쉽게 치환되는 것이라 생각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국가가 제시한 이동 편의 개선 지표에 대해선 "교통약자 이동권은 90% 이상 보장하면서 시설 접근권은 5% 미만에 그친 불균형은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고도 했다. 권영준 대법관 역시 "2022년 개정이 가능했다면, 그 이전에는 가능하지 않았느냐"며 의문을 제기했다.
국가 측 입장에 부정적이었던 이날 변론이 어떤 결론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앞선 하급심에서도 국가가 시행령을 개정하지 않은 것이 위법하다고 봤지만, 고의나 과실이 있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는 않아 국가배상 책임까지 성립하지 않는다고 봤기 때문이다. 원고 측 법무법인 지평의 임성택 변호사는 "이 사건은 제도에 의한 차별, 행정입법에 의한 인권침해 사건"이라면서 "행정부가 24년간 접근권을 무의미하게 만든 것에 대해 약자의 최후 보루인 법원이 책임을 물어달라"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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