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이미 3000명, 총 1만여 명 파병"
"과거보다 크게 떨어진 전력" 관측 우세
반전 활약 시 러시아 상대 '꽃놀이패' 쥘 듯
편집자주
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
빛과 열을 동시에 받으면 폭발하는 무기 'CTX' 반출을 위해 작전 수행 중인 육군 소령을 하급자인 대위가 막아세웁니다. 대위는 대뜸 상급자에 "검문이 있다"며 "불응 시 체포 또는 사살할 수 있다"고 협박하죠. "야 너 소속이 어디야!"라며 발끈한 소령을 향해 대위는 말합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육군 대위로 위장한 북한군 최민식 일당에 우리 군은 순식간에 제압당하고, 결국 CTX가 탑재된 차량도 빼앗기며 서울은 폭발 위기에 빠집니다.
100만 관객 찍기도 어렵던 시절 역대 한국 개봉영화 최초로 600만 관객을 넘기며 명작으로 길이 남은 1999년 개봉 영화 '쉬리'의 한 장면입니다. 당시 영화에선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선 상대를 죽여야 하는 비열한 훈련 과정 속에서 '인간병기'로 다듬어지는 북한군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북한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걸고 작전을 수행하는 최민식, 김윤진이 속한 이 부대 이름은 '폭풍군단'. 최근 북한이 러시아에 파견한 것으로 국가정보원이 확인한 특수부대입니다.
이름값 해온 폭풍군단, 이번엔?
국정원과 정부가 북한이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에 이미 3,000명을 파병한 것으로 밝힌 폭풍군단은 특수전사령부(특전사) 격인 북한 '특수작전군' 11군단의 별칭입니다. 과거 김일성 주석이 "이 부대원 중 단 한 명이라도 1개 사단과 바꾸지 않겠다"고 할 만큼 각별히 총애했던 최정예 부대로 꼽힙니다. 특수작전군은 이 폭풍군단과 해군·공군 소속 특수부대를 통합한 조직으로, 육군 10개 여단과 해군과 공군 2개 여단을 묶어 총 14개 여단으로 구성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전체 인원은 20만 명에 달하는데, 경기 포천시와 동두천시 전체 인구를 합한 규모입니다.
폭풍군단의 역사를 살펴보면 왜 김일성이 총애했는지 알 것도 같습니다. 평안남도 덕천시에 본부를 두고 있는 이 군단은 1969년 1월에 창설된 특수 제8군단을 모태로 하는데, 8군단의 경우 1968년 1·21 청와대 습격사건을 자행한 124부대를 중심으로 확대된 부대입니다. 폭풍군단은 지난해 발간된 '2022 국방백서'에 별칭을 언급할 정도로 북한군의 상징적 자원으로 꼽힙니다.
백서에 따르면 폭풍군단이 포함된 특수전 부대는 전시 땅굴을 이용하거나 잠수함, 공기부양정, 고속상륙정 등 다양한 침투수단을 이용해 전·후방 지역에 침투, 주요부대·시설 타격 및 요인 암살, 후방교란 등 배합작전을 수행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특히 영화 '쉬리'에서 그려진 것처럼, 우리나라 주요 전략시설 모형을 구축해 타격 훈련을 실시하고 무장장비를 현대화하는 등 지속적으로 전력을 보강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러 파병 북한군 '대포밥' 될까...국제사회 우려
그렇다면 이들은 ‘쉬리’에 담긴 용맹함으로 무장해 우크라이나전에 나설까요? 오랜 시간 그들의 정체를 연구해온 대북 전문가들은 대체로 부정적인 시각입니다. 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은 “우크라이나군은 물론 대부분의 해외 전문가들도 북한군이 ‘대포밥’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고 표현합니다. 러시아군의 고질적인 보급과 지휘체계 문제로 인해 정예병으로 분류되는 체첸군조차 전선에서 밀리는 상황에서, 아무리 북한군이 정예부대를 편성해도 같은 이유로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또 폭풍군단이 코로나19 확산 기간 동안 국경을 지키는 데 파견돼 보초만 서게 되면서 전투력이 떨어졌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폭풍군단 외에 북한의 정예전력으로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경호하는 ‘호위사령부’와 6.25 전쟁 당시 서울을 함락시킨 ‘근위 서울 류경수 제105 땅크사단’ 등이 꼽힙니다. 1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 호위사령부는 처우와 훈련강도, 전력 면에서 다른 군에 비해 월등하지만 김정은 호위에 전념해야 하고 류경수 땅크사단은 노후 장비와 오합지졸 군기가 문제라고 합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북한군은 6·25전쟁 이후 지상군 파병 경험이 없고, 사용 장비와 처우 문제로 실전력이 많이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정예병력 파병을 통해 전투 현장에서의 실전력을 테스트하고 향후 북한 내 재래식 전력을 향상시키는 데 활용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고 내다봤습니다.
무기 숙련도 높은 북한군, 사고 칠 수도?
그럼에도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이 신경 쓰이는 건 향후 남북 간 유사시 러시아의 자동개입이 우려되는 등 국제정세에 몰고 올 파장이 상당하기 때문입니다. 당장 우크라이나에서도 이 소식을 적극적으로 알리며 한국, 미국 등 우방국들의 지원 확대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이 같은 요구에 어떻게 부응할지 적극 검토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특히 북한군이 우크라이나전에서 ‘게임 체인저’가 될 가능성을 배제해선 안 된다는 분석도 조심스레 나옵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①지금까지 우크라이나전에 지원되는 무기 활용 숙련도가 높아 러시아군에 비해 명중률, 가용 속도를 높일 수 있다는 점 ②우크라이나전 고전의 이유로 꼽힌 러시아 병사 사기 저하 문제가 (북한군의 경우) 사상무장 등으로 개선될 수 있다는 점 ③외화벌이와 국익 기여라는 동기 부여도 확실하다는 점 등을 그 배경으로 꼽았습니다. 러시아군과 합동작전보다는 특정 지역을 맡을 가능성이 높고, 여기서 성과를 냈을 땐 러시아를 상대로 ‘꽃놀이패’를 쥘 수 있는 점도 뜻밖의 활약을 펼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미국 외교안보 전문지 포린폴리시(FP)도 ‘북한의 러시아 파병이 왜 중요한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북한 병력의 전투 능력에 의문이 있다'는 전제하에 "2년 넘게 우크라이나전의 수렁에 빠져 있는 러시아를 구하는 동시에 한반도의 군사 균형을 바꿔놓을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국정원은 현재까지 러시아로 이동한 북한군 병력이 3,000여 명으로 추정되며 오는 12월쯤 총 1만 명에 달할 것으로 내다보면서 파병 대가는 1인당 월 2,000달러(약 270만 원) 수준이 될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도 국정원 발표 이후 북한군 파병 사실을 인정하면서 이제 폭풍군단의 행보는 전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죠. 폭풍군단이 한반도를 넘어 유라시아 정세에 격랑을 일으킬지, 미풍에 그치며 의미 없는 희생을 치르며 국제적인 망신만 당하고 돌아올지 지켜볼 일입니다.
관련 이슈태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