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일은 세계 비건의 날
모녀가 꾸리는 비건 레스토랑 천년식향
소고기 맛 대체육, 비건 본고장 뉴욕서 인정
"비건 음식, 두부처럼 그 자체로 즐기도록"
식물성 재료만 쓰는 비건 레스토랑 천년식향의 안백린(31) 대표 겸 셰프, 변혜정(60) 이사는 9월 초 2년 동안 공들여 개발한 식물성 한우 대체육 '엠엠 비프(MM Beef)'를 들고 비행기에 올랐다. 목적지는 같은 달 10, 11일 세계 최대 식물성 식품 전시회 '플랜트 베이스드 월드 엑스포'가 열리는 미국 뉴욕. 한우 특유의 마블링과 풍미를 그대로 구현한 MM Beef는 뉴요커를 사로잡았다.
진짜 고기 같다는 칭찬 속에서 계약할 뜻을 밝힌 뉴욕의 레스토랑들도 여럿 있었다. 그동안 비건을 지향하면서 굳이 고기 맛을 내는 음식에 공을 들이냐는 핀잔도 들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채식의 밑바탕을 튼튼히 하기 위해선 수많은 비(非)채식인을 만족시켜야 한다며 대체육 개발에 나섰고 비건 문화가 가장 발달한 도시 중 하나인 뉴욕에서 인정받았다.
11월 1일 세계 비건의 날을 앞두고 10월 28일 서울 서초구 천년식향에서 만난 안 대표, 변 이사는 엄마와 딸 사이다. 채식에 먼저 빠진 쪽은 딸 안 대표. 공부 참 잘한다는 소리를 듣던 그는 유학을 떠나 2010년대 초반 영국에서 의료생물학을 공부하며 의사가 되기 위한 코스를 밟았다.
한국에서 지낸 청소년 시절 '고기 킬러'였던 그는 전공을 접할수록 육류 중심 식단에 회의를 가졌다. 자연스레 관심이 깊어진 환경 이슈와 동물권을 사람들에게 잘 알릴 수 있는 수단으로 찾은 게 요리였다.
2016년 무렵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의 비건 요리 학교에 들어간 그는 비건에 한정 지은 배움에 한계가 있다고 느꼈다. 이후 이탈리아, 프랑스의 레스토랑 수십 곳의 문을 두드려 겨우 취업 승낙을 받고 하루 16시간씩 요리 수련을 하며 셰프로서의 자질을 익혔다. 특히 채소, 버섯 등 식물성 재료만을 활용해 손님에게 멋진 음식을 선사하는 유럽 레스토랑에서 일한 경험은 훌륭한 밑천이 됐다.
의학도에서 셰프로, MM Beef 만든 토대 밑바탕
귀국한 안 대표는 2018년 초 친구들과 비건 레스토랑 '소식'을 열었다. 수준 높은 비건 요리로 입소문을 타면서 손님을 끌어모았다. 하지만 장사 초보였던 그는 첫 월급을 개업 1년 만에 챙기는 등 수익을 많이 거두진 못했다. 일단 식당을 유지할 정도는 돼야 채식을 널리 알릴 수 있다는 걸 체험한 그는 2020년 천년식향을 시작했다.
이번엔 여성학자이자 한국여성인권진흥원장을 지낸 어머니 변 이사와 뭉쳤다. 딸이 의학 공부를 관두고 식당을 개업한다고 했을 때만 해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직업"이라고 걱정했던 변 이사였지만 동업자로 손을 잡았다. 사람들이 두부에 채식 딱지를 붙이지 않듯, 비건 음식도 요리 자체로 즐기게 하고 싶다는 안 대표 생각에 공감해서다.
화려하고 때론 자극적이기도 한 천년식향의 메뉴는 단아하고 싱거운 맛을 내는 정형화된 채식 식당과 다르다. 안 대표는 "비건이란 틀에서 벗어나 맛있는 요리를 내놓아야 사람들이 제 이야기에 더 귀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MM Beef 역시 더 많은 사람에게 비건 요리를 맛보이고 싶다는 고민의 결과다. 발효 버섯, 코코넛 오일을 배합하고 압축해 소고기의 감칠맛과 마블링을 냈다. 최적의 재료 궁합·비율, 발효·압축 수준을 찾기 위해 2년을 실험했다. 그 결과 천년식향은 상품화가 어느 정도 이뤄진 간고기와 달리 초기 단계인 원육 시장 경쟁에서 한발 앞서 나가고 있다. 원육 대체육은 생고기나 다름없어 개발하기 더 까다롭다.
변 이사는 "MM Beef를 만들 수 있었던 건 의학을 공부했던 과학도, 셰프로서의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며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고기 맛과 비슷한 대체육을 먹으면서 건강도, 지구도 지켰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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