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조스 소유 WP "대선 후보 지지 없다" 선언
몇 시간 후 베이조스 '블루오리진'-트럼프 회동
구독 취소·내부 비판 성명… 후폭풍 일파만파
미국 진보 성향 유력 일간지인 워싱턴포스트(WP)가 소유주 제프 베이조스의 압력으로 '대선 후보 비(非)지지' 선언을 한 데 따른 후폭풍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언론사도 사설 등을 통해 정치적 입장을 표명하는데, 1976년 대선 때부터(1988년 제외) 민주당을 지지해 온 WP의 이 같은 입장 공표는 대단히 이례적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WP의 '선언' 직후, 베이조스가 창립한 항공우주기업 '블루오리진' 임원진이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만난 사실이 드러나면서 트럼프의 '언론 길들이기'에 굴복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트럼프·베이조스 거래했다" 의혹까지
2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블루오리진' 최고경영자(CEO)와 대관 담당 부사장은 지난 25일 트럼프와 미 텍사스주(州) 오스틴에서 만났다. 양측이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 회동은 WP 편집인 겸 CEO인 윌리엄 루이스가 '독자에게 보내는 글'을 통해 "WP는 이번 대선부터 대통령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힌 지 몇 시간 만에 이뤄졌다고 NYT는 전했다.
WP의 '대선 후보 지지 표명 관행 중단' 선언은 미국에서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신문사 구성원들 간 합의가 아니라, 소유주인 베이조스가 밀어붙인 결정으로 드러나고 있어서다. WP 내부에서는 이미 '(민주당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지지' 사설 초안까지 완성돼 있었는데, 베이조스가 게재를 막은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당선을 예측하고 줄을 선 것'이라는 비판이 잇따랐다. 아마존과 블루오리진의 창립자 베이조스가 자신의 사업을 위해 언론 자유를 침해했다는 해석이다.
이런 가운데 이날 추가 공개된 '블루오리진 임원-트럼프' 회동은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이번 결정에 반발해 사임한 로버트 케이건 전 WP 총괄편집인은 "트럼프는 베이조스가 약속을 지키도록 기다렸다가 블루오리진 측을 만났다"며 "둘 사이에 '거래'가 있었음을 말해 준다"고 비난했다. 베이조스가 트럼프 요구대로 WP의 '해리스 지지'를 막았고, 트럼프는 재집권 시 모종의 혜택 제공을 약속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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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위협" 비판 일파만파
파문은 가라앉지 않는 모습이다. WP 편집장을 지낸 마틴 배런은 "비겁한 짓이고, 민주주의는 희생양이 됐다"고 분노했다. '워터게이트 특종'으로 유명한 WP 기자 밥 우드워드, 칼 번스틴도 "트럼프가 민주주의에 가하는 위협에 대한 압도적 증거를 무시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WP 칼럼니스트 미셸 노리스도 이날 사표를 냈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WP 구독 취소' 운동이 일고 있다.
WP 오피니언란에도 회사 비판 성명이 게재됐다. 성명은 "본지가 대선 캠페인에서 지지 표명을 중단하기로 한 결정은 끔찍한 실수로, 신문의 근본적인 편집 신념을 포기한 것"이라며 "민주주의적 가치와 법치주의 등에 대한 헌신, 트럼프가 이들에 가하는 위협을 분명히 해야 할 때"라고 밝혔다. WP 칼럼니스트 19명이 이 성명에 동참했다.
내부 반발이 글로만 표출된 것은 아니다. NYT는 "퓰리처상을 받은 WP 만화가 앤 텔네이스는 그 분노를 더 간결하게 포착했다"고 전했다. 지난 25일 텔네이스는 WP 만평으로 어두운 물감이 뒤덮은 그림 하나를 게재했다. 이 만평의 제목은 2017년부터 WP의 슬로건으로 채택된 "민주주의는 어둠 속에서 죽는다(Democracy Dies in Darkness)"였다. 이 신문의 신념인 민주주의가 WP 안에서 실제로 죽음을 맞았다는 풍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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