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테르테, 필리핀 마약 청문회 첫 출석
"할 일 했을 뿐... 나라 위한 선택" 항변
“사과도, 변명도 않겠다. 나는 내가 할 일을 했을 뿐이다. 여러분이 믿든 믿지 않든, 나라를 위해 그렇게(마약 사범 소탕) 했다.”
재임 당시 ‘마약과의 전쟁’을 주도했던 로드리고 두테르테(79) 전 필리핀 대통령이 28일 필리핀 의회에서 열린 관련 청문회에 처음으로 출석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마약 사범 체포 도중 발생한 모든 책임을 자신이 지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당시 7,000여 명 이상이 재판 없이 목숨을 잃은 까닭에 ‘반인도적 범죄’이자 ‘초법적 살인’이라는 비판이 거셌지만 그는 마약 소탕 작전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항변했다.
"무고한 국민 보호하려던 정책"
마닐라타임스 등에 따르면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이날 필리핀 상원 윤리위원회 격인 ‘블루리본 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마약과의 전쟁은 코카인과 마리화나 등 불법 약물을 근절하기 위한 것”이라며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닌, 무고한 이와 무방비 상태의 국민을 보호하려던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두테르테 전 대통령이 퇴임 후 ‘마약과의 전쟁’ 관련 청문회에 직접 나선 것도, 입장을 밝힌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취임 직후인 2016년 7월부터 ‘마약 무관용 원칙’을 내세우며 마약 사범을 대거 잡아들였다. 마약 복용자·판매자가 투항하지 않으면 즉각 총격을 가해도 좋다며 경찰에 면죄부를 주기도 했다.
필리핀 정부는 이 과정에서 약 7,000명이 숨진 것으로 공식 집계했다. 반면 국제 인권단체는 3만 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들은 두테르테 전 대통령이 살인과 폭력을 지지했고, 권력을 등에 업은 경찰이 거리와 집에서 어린이와 청년 등 무고한 민간인까지 학살했다고 주장해 왔다.
"전적으로 법적 책임지겠다"
이날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정부가 경찰에 ‘살인 허가’를 줬다는 위원회 소속 의원들의 지적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는 “나는 불법 약물에 중독된 사람들을 범죄자가 아닌 의학적 치료가 필요한 피해자이자 환자로 여겨왔다”며 “경찰에도 방어 목적의 대응만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다만 마약 근절 과정에서 파생된 결과는 자신의 책임이라고 덧붙였다.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정책이 완벽하지 않았고 실수도 많았다”면서도 “내 명령을 따른 경찰을 비난하지 말라. 그저 자신의 업무를 수행했을 뿐이고, 내가 전적으로 법적 책임을 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청문회장 안팎에는 마약과의 전쟁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가족 수백 명이 희생자들의 사진을 들고 모여들었다. 이들은 두테르테 전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눈물을 흘리거나 울부짖었다고 현지 매체들은 전했다.
이날 청문회는 필리핀 전·현 대통령 세력 간 갈등의 결과다. 국제형사재판소(ICC)는 지난 2021년 필리핀 정부가 마약 사범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민간인에 대해 광범위하고 체계적인 공격이 벌어졌다고 판단하고 정식 조사에 들어갔다.
필리핀 정부는 그간 ICC 협조 요청을 거부하며 ‘두테르테 지키기’에 나서왔다. 그러나 최근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현 대통령과 두테르테 전 대통령 세력 간 반목이 깊어지면서 전 정부의 ‘사법 외 살인’ 논란이 8년 만에 심판대에 서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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