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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두루... '애물단지' 논 좀 나눠 쓰자는 두루미의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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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두루... '애물단지' 논 좀 나눠 쓰자는 두루미의 호소

입력
2024.10.31 07:00
수정
2024.10.31 14:5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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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선 이미 재야생화(리와일딩) 자연보전기법 대두
과학적 증거 부족하다는 한계 있지만 시도할 가치 있어


강원 철원군 민간인출입통제구역(CCZ) 내 빈 논에서 두루미가 먹이를 찾고 있는 모습. 철원=연합뉴스

강원 철원군 민간인출입통제구역(CCZ) 내 빈 논에서 두루미가 먹이를 찾고 있는 모습. 철원=연합뉴스

강원 철원군 비무장지대(DMZ)와 민간인출입통제구역(CCZ)에는 1990년대부터 멸종위기종인 두루미와 재두루미가 날아오고 있다. 그 수도 해마다 늘어 최근 철원을 찾는 두루미는 1,000마리 이상, 재두루미는 5,000마리 이상에 달한다. 이는 전 세계 개체 수의 절반을 넘는 수준이다.

두루미와 재두루미가 이곳을 찾게 된 데는 DMZ와 CCZ의 '재야생화'가 원인으로 꼽힌다. '리와일딩'(rewilding)이라고 불리는 재야생화는 동식물의 자생적 활동을 통해 역동적 생태계를 만들고자 하는 새로운 자연 보전 전략으로 미국과 유럽에서 확산되며 국제적 반향을 얻고 있다.

논, 인간과 두루미가 시차 두고 함께 이용

주요 재야생화(리와일딩) 유형

주요 재야생화(리와일딩) 유형

철원 내 두루미를 연구해온 최명애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에 따르면 70년간 인간의 활동이 차단된 DMZ 안에서는 논이 자연스럽게 천이 과정(식물군집의 변화)을 거쳐 습지로 변하면서 '수동적 재야생화’가 이뤄졌다. 그러면서 이곳은 두루미에게 안전한 잠자리 역할을 하고 있다.

DMZ 밖 CCZ에는 1960년대 대규모 정착 프로그램이 시행되면서 기계 농업이 도입됐고, 땅에는 알곡이 남게 됐다. 이는 두루미에게 좋은 먹거리가 되고 있다. 최 교수는 "두루미가 DMZ에서 잠을 자고 CCZ로 출근을 해 알곡을 먹는 흐름이 이어졌다"고 말한다.

강원 철원군 민간인출입통제구역(CCZ) 내 논에서 재두루미가 먹이를 찾고 있는 모습. 최명애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제공

강원 철원군 민간인출입통제구역(CCZ) 내 논에서 재두루미가 먹이를 찾고 있는 모습. 최명애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제공


CCZ 내 두루미를 위해 물을 댄 논에 고니가 찾아온 모습. 최명애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제공

CCZ 내 두루미를 위해 물을 댄 논에 고니가 찾아온 모습. 최명애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제공

DMZ가 수동적 재야생화라면, CCZ는 농경지를 야생동물과 나눠 쓰는 재야생화의 형태인 토지 공유(랜드셰어링·land sharing)의 일종으로 분류될 수 있다. 여기에는 두루미를 위한 농부들의 노력도 담겨있다. 최 교수는 "농부들이 수확이 끝난 뒤 볏짚을 썰어 논을 덮어주고 물을 대주면 두루미가 가장 좋아하는 깊이의 습지가 생긴다"며 "DMZ 내 습지가 아직 얼지 않아 잠자리가 애매한 두루미들이 이 습지를 활용한다"고 설명했다.

농부들의 이 같은 활동은 두루미, 독수리, 큰기러기에 안식처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논 생태계를 활성화시키고 있다. 논에 물을 대면 우렁이가 살아나 두루미에게 좋은 먹이가 되는 등 새로운 먹이 그물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또 두루미가 활동한 지역 토질은 미생물 생태계를 활성화시키는 것으로 조사됐다.

CCZ에서는 같은 논을 두고 3월부터 10월까지는 농부가, 이후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이듬해 3월까지는 두루미가 이용하고 있다. 이는 쌀 소비가 줄면서 논의 존속 가능성마저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인간과 자연이 관계를 맺는 새로운 방식을 실험해 볼 수 있는 창구로서 바라볼 수 있는 가능성도 제시하고 있다. 최 교수는 "논이 비단 쌀을 생산하는 공간이 아니라 습지 생태계의 기능을 하고 있다"며 "농민뿐 아니라 두루미, 여러 생물이 함께 꾸려가는 삶의 터전으로 새롭게 개념화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북미, 유럽에선 적극적 재야생화 시도 중

2017년 미 캘리포니아 북부 래슨 국유림에서 관찰카메라에 포착된 엄마 늑대와 새끼 늑대 두 마리의 모습. 회색늑대는 인간에 의해 멸종위기에 놓였다가 1995년 옐로스톤 국립공원에 방사돼 그 수를 회복하고 있다. 캘리포니아=AP 연합뉴스

2017년 미 캘리포니아 북부 래슨 국유림에서 관찰카메라에 포착된 엄마 늑대와 새끼 늑대 두 마리의 모습. 회색늑대는 인간에 의해 멸종위기에 놓였다가 1995년 옐로스톤 국립공원에 방사돼 그 수를 회복하고 있다. 캘리포니아=AP 연합뉴스

사람이 개입하지 않은 DMZ와 다른 형태의 재야생화도 있다. 학계에서는 재야생화의 유형을 크게 ①북미를 중심으로 한, 최상위 포식자를 재도입하는 영양 재야생화(trophic rewilding) ②초식동물을 방목하는 유럽의 생태적 재야생화(ecological rewilding) ③도시나 농경지처럼 인간 활동이 활발한 지역에서 야생동물과 인간의 조화를 모색하는 노력 등 세 가지로 구분한다.

재야생화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는 건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늑대 복원 프로젝트다. 국내 재야생화 도입을 강조하고 있는 김산하 생명다양성재단 대표는 지난달 창작 집단 이야기와 동물과 시(이동시)와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에서 개최한 리와일딩 포럼에서 "옐로스톤에서 늑대가 사라지자 사슴이 폭증하게 됐다"며 "1995년 늑대 14마리를 도입한 이후 유의미한 변화가 있었다"고 소개했다. 늑대가 있는 군락으로 엘크가 이동하지 않으면서 나무들이 자라기 시작한 것이다. 강변의 버드나무가 자라면서 비버가 댐을 짓기 시작하고, 습지가 조성되면서 다른 어류와 새, 파충류가 돌아오는 등 생태계 회복으로 이어졌다.

과학적 증거 부족 지적 있지만 시도해볼 만

김산하 생명다양성재단 대표가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에서 열린 학술대회 '아시아 리와일딩 포럼'에 참석해 재야생화(리와일딩)를 소개하고 있다. 생명다양성재단 제공

김산하 생명다양성재단 대표가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에서 열린 학술대회 '아시아 리와일딩 포럼'에 참석해 재야생화(리와일딩)를 소개하고 있다. 생명다양성재단 제공

생명다양성재단국내에서 땅을 매입해 재야생화를 시도하고 있다. 재단은 경기 파주시 조리읍 장곡리에 위치한 1,351㎡(약 408평)의 임야를 매입해 자연에 되돌려주는 '야생신탁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재단은 프로젝트가 성공해 땅을 구매하게 되면 별도로 관리하지 않고 스스로 변화하도록 내버려둔다는 계획이다. 인근 공릉호에서는 고라니, 오소리, 너구리, 멧돼지 등 다양한 포유류가 서식하는 것으로 확인돼 많은 동물이 땅을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게 재단 측의 설명이다.

하지만 재야생화에 대한 장밋빛 시각만 있는 건 아니다. 생태학자들을 중심으로 재야생화를 통한 생태 복원의 과학적 증거가 아직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재야생화 과정에서 침입 외래종이나 새로운 질병이 복원 대상 생태계에 유입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고, 지역 주민이나 가축과 충돌할 확률도 있다.

그럼에도 이 같은 시도가 의미가 없는 건 아니다. 최 교수는 "과거 자연보전 활동을 통해 생물다양성이 개선되고 자연환경이 나아졌다고 보긴 어렵다"며 "재야생화와 같은 다른 시도를 해보는 것도 좋은 것 같다"고 평가했다.

고은경 동물복지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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