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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면 달려가고 책값은 깎고...독자들이 그리운 작가·출판사의 생존법"

입력
2024.11.01 04:30
수정
2024.11.01 19:27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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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직접 찾는 독서 모임·낭독회·팝업
문학책, 더 짧아지고 가격은 제자리 지켜
"독자를 키워내는 '마중물 독서' 필요해"

편집자주

책이 외면받는 시대에서도 곳곳에서 영업을 이어가는 다채로운 독립서점은 독서 문화를 위한 전초기지입니다. ‘전혼잎의 독립서점’에서는 한국일보에서 문학을 담당하는 전혼잎 기자가 ‘문학’의 어제와 오늘, 내일을 큐레이션합니다.

올해 9월과 10월 소설가 김홍이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찾아가는 북토크 기획 관련 게시물. 김홍 인스타그램 캡처

올해 9월과 10월 소설가 김홍이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찾아가는 북토크 기획 관련 게시물. 김홍 인스타그램 캡처

#. 최근 소설집 ‘여기서 울지 마세요’를 낸 소설가 김홍은 올해 9월과 10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당신의 독서 모임에 김홍이 찾아갑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독자를 더 많이 만나고 싶다는 생각에 “부르면 찾아가는 신개념 북토크”를 하기로 한 것. 출판사나 서점 등이 기획하고 작가를 섭외하는 북토크와 다른 발상이었다. 김 작가는 한국일보에 “서울, 경기 의정부시, 경남 하동군, 부산 등 전국의 독서 모임에 '부름'을 받아 다녔다”고 귀띔했다.

지난달 서울 서초구의 한 카페에서 열린 시 관련 인스타그램 계정 포앰매거진의 팝업 스토어에 90년대 홍보 전단지를 연상하게 하는 포스터가 붙어있다. 전혼잎 기자

지난달 서울 서초구의 한 카페에서 열린 시 관련 인스타그램 계정 포앰매거진의 팝업 스토어에 90년대 홍보 전단지를 연상하게 하는 포스터가 붙어있다. 전혼잎 기자

#. “오늘은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려고요.” 시인 황인찬은 지난달 서울 서초구의 한 카페에서 시 낭독회를 시작하며 이렇게 말했다. 시를 주제로 한 인스타그램 계정 포엠매거진이 연 행사에서다. 황 시인은 “참석자가 원하는 시를 읽겠다”며 현장에서 추천을 받아 낭독할 시를 정했다. 포엠매거진 운영자 배동훈(27)씨는 “시를 유쾌하고 간편하게 접할 기회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서 출판사 문학과지성사와 마플샵이 함께 '찰나의 서점'이라는 이름의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마플코퍼레이션 제공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서 출판사 문학과지성사와 마플샵이 함께 '찰나의 서점'이라는 이름의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마플코퍼레이션 제공

#. ‘팝업스토어의 성지’로 불리는 서울 성동구 성수동. 도보 5분 거리에 문학을 콘셉트로 한 팝업스토어 두 개가 최근 들어섰다. 출판사 문학과지성사와 마플샵의 ‘찰나의 서점’과 문학동네와 포인트오브뷰의 ‘THE POETRY HOUSE: 시집’이다. 문학동네의 팝업에서는 시인 김민정, 안희연, 이병률 등이 큐레이터로 나서 방문객들의 사연을 듣고 어울리는 시집을 직접 골라준다.

‘책 참 안 읽는 나라’인 한국 문학계의 최근 풍경이다. 출판사와 작가들은 이처럼 독자들과의 접점을 어떻게든 늘리려고 고군분투 중이다.

젊은 세대 사이에서 활자 읽기를 '있어 보이는 행위'로 보는 최근의 경향은 ‘텍스트힙’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이는 그만큼 독서와 문학이 '비주류 문화'였음을 방증하기도 한다.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트렌드는 원래 있었던 것이 아니라 없었던 것을 지칭한다”면서 “사람들이 유튜브와 인터넷만 보다 보니 책이 낯선 존재가 됐고, 그래서 읽는 행위를 새삼 신선하고 새롭다고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얇아지는 문학책, 가격은 '찔끔' 올렸다

이달 20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책을 구매한 시민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뉴스1

이달 20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책을 구매한 시민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뉴스1

문학 출판시장도 ‘더 짧고, 더 가볍게’라는 생존 전략을 짰다. 책을 부담스러워하는 이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사고 펼쳐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대한출판문화협회에 따르면 문학책의 평균 분량은 2015년 299면에서 2020년 261면, 2022년 258면, 2023년 256면으로 줄어드는 추세다.

2014년 평균 4,400원이었던 짜장면 한 그릇이 지난해 6,361원으로 약 44.6%가 오를 동안 ‘마음의 양식’이라고 한때 추앙받았던 책의 평균가는 1만5,631원에서 1만8,633원으로 19.2% 상승하는 데 그쳤다. 특히 문학책은 만화, 아동책에 이어 가장 저렴해 평균가가 1만5,167원이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종이 원료인 펄프 가격이 오르면서 종이값이 폭등했는데도 워낙 ‘책값이 비싸다’고 여기는 독자들이 많아 책값을 쉽게 올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책은 읽어야"...공통 감각에 희망 품는 문학계

김홍(가운데) 작가가 지난달 서울 마포구에서 '찾아가는 북토크'를 통해 독자를 만나고 있다. 김홍 제공

김홍(가운데) 작가가 지난달 서울 마포구에서 '찾아가는 북토크'를 통해 독자를 만나고 있다. 김홍 제공

아무리 외면받아도 책은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권위를 지닌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3년 국민 독서 실태조사에서 성인 10명 중 7명이 독서가 도움이 된다고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스로의 독서량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성인 응답자는 71.9%였다. 당장 책을 가까이 하진 않더라도 ‘많이 읽어야 한다’는 공통 감각이 존재하는 셈이다.

이는 책 읽는 분위기만 조성된다면 독서의 세계에 더 많은 사람들이 발을 들일 가능성을 보여준다. 전국의 독서 모임을 찾아다닌 김홍 작가는 “최근 경기 의정부시에서 중·고등학생들을 만났는데, 평소에 소설을 많이 읽지 않았다는 친구들도 책에 대해 흥미롭게 이야기를 나누더라”고 전했다. “독자를 키워내는 ‘마중물 독서’가 필요하다”는 것이 한기호 출판마케팅연구소장의 말이기도 하다. 한 소장은 “어릴 때부터 독자로 키우지 않았는데 청소년이 성인이 된다고 저절로 책을 읽진 않는다”면서 “사람들의 수준에 맞는 책을 다양하게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출판계가 만년 불황을 호소하면서도 꾸준히 책을 만들어내는 원동력도 '읽는 사람들의 귀환'을 믿고 기다리는 데 있다. 대한출판문화협회 기준 지난해 세상에 나온 새 책은 총 6만2,865종. 출판사도 7만9,035곳으로 각각 전년보다 2.8%와 5.1%가 늘었다. 그러니 읽기를 잊어버린 사람들이 할 일은 간단하다. 쏟아져 나오는 책을 덥석 집어 일단 읽어보는 것이다.


전혼잎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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