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분쟁 중인 고려아연이 2조5,000억 원에 달하는 대규모 유상증자를 발표했다. 조달한 자금 대부분은 앞서 경영권 방어용 자사주를 사들이기 위해 빌린 돈을 상환하는데 쓴다고 한다. 주주가치 훼손은 개의치 않겠다는 태도다.
고려아연은 그제 임시 이사회를 열어 주당 67만 원(예정가액)에 약 373만 주의 신주를 발행하는 것을 의결했다. 고려아연 기존 전체 발행주식의 20%에 달하는 물량이다. 신주 물량의 20%는 우리사주조합에 우선 배정하고 나머지 80%를 일반인 상대로 공모한다.
고려아연 측은 “경영 투명성을 강화하고 국민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거창한 명분과 달리 실제론 최윤범 회장의 경영권 방어를 위한 증자라는 게 대체적 분석이다. 우호지분인 우리사주조합 지분을 챙기고, 분쟁 상대방인 영풍∙MBK파트너스 지분율은 낮추겠다는 계산일 것이다
고려아연은 모집액의 90% 이상을 채무상환자금으로 사용한다고 공시했다. 앞서 자사주 매입을 위해 2조3,000억 원을 빌렸는데 주주들 돈을 모아 이 빚을 갚는데 쓰겠다는 것이다. 당시엔 주주 권익 보호를 위해 자사주를 소각하겠다더니 이번엔 유통주식 수를 대폭 늘리겠다니 앞뒤가 맞지도 않는다. 당시 신고서엔 "이후 회사 재무구조 변경 계획은 없다”고 명시해놓고 그 이전부터 유상증자를 위한 기업실사를 진행했다는 정황까지 나왔다. 사실이라면 주주를 기만한 명백한 자본시장법 위반이다.
신주 발행 가격은 전날 종가(154만3,000원)의 절반에도 한참 못 미쳤다. 차입을 통해 89만 원에 자사주를 매입해놓고 67만 원에 신주를 발행하는 건 누가 봐도 비정상이다. 연일 주가가 폭락하는 게 당연하다.
양측은 서로 시세조종을 했다며 공격하는 등 진흙탕 싸움을 이어왔다. 그 피해를 고스란히 주주들이 떠안는 상황에서 당국이 소극적 대응만 해선 곤란하다. 금융감독원이 어제 자본시장법 위반 여부를 조사하고 유상증자 정정신고서 요구를 검토하겠다고 나선 건 마땅하다. 시세조종 등 다른 불공정 행위도 철저히 조사해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번 사태는 상법 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걸 또 한번 일깨워준다. 이사가 주주들은 안중에 없이 지배주주에만 충실하니 이런 혼탁한 상황이 되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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