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전직 장관 B씨는 종종 중요한 저녁 모임에 갈 때 수백 미터 전에 내려서 걸어갔다고 한다. 집에 갈 땐 택시를 이용했다. 운전기사가 어느 장소에서 누구를 만나는지 주변에 옮기면 난처할 수 있어서다. 관용차 안에선 가급적 민감한 대화나 전화를 자제했다. 차에서 내려 통화를 한 적도 여러 번이다. 그가 유난히 예민해서만은 아니다. 운전기사에게는 본인의 일거수일투족이 다 노출된다. CCTV나 다름없다.
□ 과거 대형사건 수사에서 운전기사가 결정적 역할을 한 사례는 많다. 2002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최규선 게이트’가 대표적이다. DJ의 총애를 받던 사업가 최씨의 운전기사가 “대통령 3남 홍걸씨를 등에 업고 각종 이권에 개입했다”고 폭로한 것이 발단이 됐다. ‘MB 멘토’였던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은 돈을 건넨 브로커의 운전기사가 찍은 돈다발 사진 한 장에 발목이 잡힌 경우다. 최순실(개명 후 최서원)씨 일가 운전기사도 1998년 대구 달성 보궐선거에서 최씨 일가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수억 원을 지원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 우리나라만의 얘기는 아니다. 2016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전직 백악관 운전기사들은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할 목적으로 발간된 책에서 힐러리 클린턴의 ‘난폭함’을 증언한다. 한 기사는 “힐러리는 메모장, 파일, 자동차 열쇠 등 손에 잡히는 것은 닥치는 대로 집어 던졌다”고 했다. 또 다른 기사는 “클린턴 부부는 차를 타고 가는 내내 고함을 지르며 싸웠다. 하지만 차에서 내리자마자 갑자기 미소를 띠고 군중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고 이중성을 폭로했다.
□ 더불어민주당이 공개한 윤석열 대통령과 명태균씨의 통화 녹음 제보자가 누군지 추측이 난무한다. 민주당은 “지금은 공개하지 않을 것이고 신변보호 절차를 밟고 있다”는데, 명씨는 “(내가) 고용한 A씨로 추정된다”고 했다. 운전기사 김모씨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김씨는 부인한다. 김건희 여사 공천개입 의혹을 제기한 강혜경씨 변호인은 “명씨 운전기사가 여러 명인데 그중 한 명이 도와줄 가능성이 있다”고도 했다. 실제 제보자가 따로 있다 해도, 명씨가 이렇게 평상시에 대놓고 떠벌렸다면 운전기사들이 은밀한 내용을 상당히 알고 있긴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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