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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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총리 취임 후 한 달 만에 치러진 10월 27일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과 공명당 연립 여당이 15년 만에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2012년 이후 가히 절대적인 우위를 유지해 왔다고 할 수 있는 자민당은 기존 247석에서 56석이나 잃으며 191석을 얻는데 그쳤고, 공명당도 32석에서 8석을 잃어 24석에 머물렀다. 두 당 합계가 215석으로 과반인 233석에 미치지 못했다. 한편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은 의석을 50석이나 늘리며 148석을 확보했고, 기존에 7석이었던 국민민주당의 의석수는 4배가 늘어나 28석이 되면서 자타공인 캐스팅보트로 등극했다. 일본유신회는 기존 44석에서 6석 빠진 38석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이번 선거 결과로 인해 일본 정치권은 혼돈 속으로 빠져 들고 있다. 자민당의 개혁과 쇄신을 요구하는 일본 국민들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의례적인 방식으로 중의원을 해산하고 선거로 재신임을 노리던 이시바 총리의 정치적 입지는 매우 좁아졌다. 미국 대선 이후 이달 11일 소집될 것으로 보이는 특별국회에서 치러질 총리 지명 선거에서 이시바가 과반을 득표하지 못하면 결선 투표까지 갈 수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결선 투표가 치러지는 것 자체가 일본 정치사에 매우 드문 일이며 정치적 혼란이 큰 상황임을 방증한다는 것이다. 총리 지명을 위한 결선 투표는 지금까지 총 네 번 있었다. 1947년, 1948년, 1950년에 각각 있었고, 네 번 째도 무려 30년 전인 1994년에 있었다.
1994년 당시 총리 지명 선거에서는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사회당 위원장과 가이후 도시키(海部俊樹) 전 총리가 경쟁했다. 무라야마가 선출되기 전 소수 여당이었던 비자민당 연립정부의 하타 쓰토무(羽田孜) 내각이 총사퇴하자 당시 야당이었던 자민당은 제2당이었던 사회당, 그리고 신당 사키가케와 함께 무라야마를 총리 후보로 내세웠고, 비자민당 연립 측이었던 신생당, 공명당 등은 자민당을 탈당한 가이후를 후보로 내세웠다. 그런데 1차 투표에서 양 후보의 득표가 모두 과반에 미치지 못해 결선투표를 치렀고, 결국 무라야마가 선출되면서 이른바 '자민당-사회당-사키가케(자사사)' 3당 연립 정권이 탄생됐던 것이다. 무라야마 총리는 '무라야마 담화'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인물인데, 그는 사회당 위원장 출신이었지만 그를 총리로 만들어 낸 연립 정권의 큰 축이 자민당이었다 보니, 후에 소신 표명 연설에서 "자위대 합헌, 미일 안보 견지"를 표명하며 사회당의 안보 관련 입장을 급선회한 바 있었다.
한편 최근 이른바 북한의 우크라이나 전쟁 '파병설'과 함께 ICBM 발사 소식이 보도되면서 일본 내에서도 안보에 대한 위협 인식이 고조되며 집단적 자위권 등을 둘러싼 논의가 다시금 자극받는 모습이다. 유럽의 안보 위기가 인도-태평양 지역과 긴밀하게 연계되는 긴박한 상황에서 자민당-공명당 연립 여당이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한 채 정치적 유연성이 필요해졌다는 점이 1994년 상황과 묘한 평행선을 그린다.
여당 측이 일본유신회나 국민민주당 같은 제3의 정당과 연대를 모색해야 하는 상황인데, 이들은 방위 정책에서 자민당과 차이를 보여 왔다. 일본유신회는 자민당보다 더 강경한 안보 정책을 지지하지만, 국민민주당은 이른바 원론적인 부분을 지적해 왔다는 점이 흥미롭다. 자민당이 국방규정과 자위대를 명시하는 헌법 9조 개정안을 내세우고 있는 데 대해 국민민주당의 다마키 유이치로(玉木雄一郎) 대표는 "헌법을 개정해 '국방규정'을 신설해도 위헌 논란이 해소되지 않는다"면서 "자민당이 말하는 '국방규정'을 만들면 자위대의 '조직으로서의 위헌론'은 해소되더라도 자위권 행사라는 '행위에 대한 위헌론'은 해소되지 않는다"고 지적한 바 있다.
1994년의 무라야마 연립 내각이 안보 문제에서의 파격적 결정을 내렸듯이, 이번에도 어떤 연립 정권이 만들어지느냐에 따라 일본의 안보 정책에서 변화가 생길 가능성도 커졌다. 이는 한국의 안보 정책에도 상당한 파장을 일으키게 될 사안이니 만큼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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