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 수전 앤서니
1872년 11월 5일, 미국 여성 참정권 운동가 수전 앤서니(Susan B. Anthony, 1820~1906)가 동료 여성 14명과 함께 대통령 선거에 투표했다. 그는 약 2주 뒤인 18일, ‘기망(欺罔, Shenanigan) 혐의’로 혼자 기소됐고, 이듬해 6월 배심원 재판에서 벌금 100달러와 재판 비용 지불 판결을 받았다.
당시 그는 달변의 반노예제-여성 인권운동가로 유명했고, 뉴욕에서 여성 주간지 ‘더 레볼루션’도 발간하고 있었다. 대선 나흘 전인 11월 1일, 그는 뉴욕 먼로 카운티 유권자 등록사무소를 찾아갔다. 담당자가 주법을 근거로 여성 등록을 거부하자 앤서니는 1868년 비준된 수정헌법 14조(생명 자유 재산권 평등권 조항)를 아느냐며 따졌다. 재판 기록에 따르면 그들이 옥신각신하는 장면을 지켜보던 선거 감독관이 “이봐 젊은이, 어쩌겠는가? 이건 등록해줘야 할 것 같은데”라고 말했다고 한다. 앤서니 등 여성 15명은 명부상 정식 유권자로 등록됐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된 당국은 주동자인 앤서니만 기소했다. 앤서니가 “미국 역사상 가장 큰 사법적 분노를 일으킨 사건”이라 규정했던 그 사건 재판에서 그는 수정헌법 14조와 15조 1항(인종 피부색 투표권 차별 금지조항)을 들어 항변했지만 판사는 배심원단에게 심의 없이 유죄를 평결하라고 요구했다. 그 결과가 100달러 벌금이었다.
당연히 앤서니는 벌금 납부를 거부했고, 대신 캘리포니아주 상원의원이던 에런 사전트(Aaron Sargent)를 통해 1878년 여성 참정권 헌법 수정안을 발의했다. ‘수전 앤서니 수정안’이라 불리는 그 법안은 1920년 수정헌법 19조로 실현됐고, 그해 대선에 여성 약 800만 명이 투표했다.
수많은 미국 여성 유권자는 이번 대선에서도 뉴욕 로체스터의 마운트 호프 공동묘지에 묻힌 앤서니의 묘를 찾아 비석에 “나 오늘 투표했어요(I voted today)”라는 문구의 스티커를 붙이는 순례를 이어갔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