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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기도가 세속의 묵념으로

입력
2024.11.11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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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1 영연방 2분 묵념

11월 두 번째 일요일 영국 런던 전몰자 위령탑(Cenotaph) 앞에서 열리는 현충일 기념행사의 2분 묵념 의례. britishlegion.org.uk

11월 두 번째 일요일 영국 런던 전몰자 위령탑(Cenotaph) 앞에서 열리는 현충일 기념행사의 2분 묵념 의례. britishlegion.org.uk


종교철학은 침묵과 신을 향한 지향의 행위인 기도를 염격히 구분하지만, 음악이 형식과 내용을 악보로 완성하듯, 종교인들은 묵도(默禱) 혹은 묵언수행이라는 침묵의 기도를 만들어냈다. 그 형식이 묵념으로 제도적으로 세속화한 것은 인류가 경험한 사상 초유의 종말적 하르마게돈(아마겟돈), 즉 제1차 세계대전 이후였다.

영국 국왕 조지5세가 종전 1주년인 1919년 내각의 요청을 수용, 그해 11월 7일 2분 묵념 성명을 발표했다. “나는 제국의 모든 지역에서 우리 국민이 위대한 구원의 역사를 환기하고 그 역사에 목숨 바친 이들의 기억을 영원히 간직”하도록 하기 위해 “11월 11일 오전 11시부터 2분간 모든 일상 활동을 완전히 중단하고 묵념하는 게 나의 바람이자 희망이다. 그 시간 동안 실행이 불가능한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모든 일과 소리, 움직임을 멈추어야 하며 완벽한 고요 속에서 모두의 생각이 영광스럽게 숨진 이들을 경건하게 추모하는 데 집중”되게 하자고 당부했다. 첫해 잉글랜드 플리머스의 한 매체는 “도시를 휩쓴 거대한 고요에 시간이 멎었다”고 “시민들도 마법에 걸린 듯 발걸음과 잡담을 그쳤다. 교통수단이 멈추고 공장의 소음도 잦아들었다”고 썼다.

1차 대전 애도의 묵념은 한 해 전인 1918년 5월 영국 식민지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시장해리 핸즈(Harry Hands)가 아들의 전사 소식을 접한 뒤 처음 공식화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이듬해 5월 14일까지 무려 1년간 매일 정오 조총을 발사하며 3분간 묵념하도록 했지만, 너무 길다는 지적을 수용해 공고를 통해 2분으로 변경했다고 한다. 로이터통신을 통해 그 소식을 접한 영국군 아프리카 지역 사령관 퍼시 피츠패트릭 등이, 전장에서 아들을 잃은 이들과 함께 저 의례의 제도화를 건의했다.

한국과 미국 등 대다수 국가의 현충일 묵념은 1분이지만 영연방 국가들은 지금도 북반구의 경우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2분 묵념을 고수하고 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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