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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랑외교' 중국의 깜짝 유화 제스처... '한국인 무비자' 내민 속내는[문지방]

입력
2024.11.1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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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한국인 무비자 조치' 외교가도 "전격적"
관광객 유치 경기 부양, 한반도 영향력 확대
中 '전랑외교' 맞선 윤 정부 대중외교 먹혔다?
오히려 중국의 개방적 전환 분위기 주목해야

편집자주

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9월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75주년 기념 만찬에서 연설하고 있다. 베이징=AP 뉴시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9월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75주년 기념 만찬에서 연설하고 있다. 베이징=AP 뉴시스

그야말로 '금요일 밤의 서프라이즈'였습니다. 지난 1일 중국이 한국을 포함한 비자 면제 조치를 발표한 것 말입니다. 중국은 이날 저녁 9시 홈페이지에 린젠 외교부 대변인의 정례 기자 브리핑 내용을 게시하며, 한국을 포함한 9개국에 대해 내년 12월 31일까지 '일방적 무비자 정책'을 시행한다고 밝혔습니다. 1시간 빠른 시차로 인해 한국에는 오후 10시가 넘은 늦은 밤에 '속보'가 전해졌습니다.

주중한국대사관도 사전에 파악하지 못했을 만큼 급진적인 조치였습니다. 중국의 한국인 비자 면제는 1992년 정식 수교 이후 처음입니다. 올해 한중 간 고위급 대화가 이어지면서 양국 간 인적 교류를 늘려야 한다는 교감은 있었지만, 이렇게 "전격적으로 발표할 줄은 몰랐다"는 게 외교가의 대체적인 반응입니다.

중국은 왜 지금 한국에 비자 면제 조치라는 '유화적 제스처'를 내밀었을까요. 중국 지역 공관장을 지낸 복수의 대중 외교통과 전문가에게 물었더니 공통적인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여러 면에서 이제 한국이 필요해졌다"는 겁니다.

경제적 이득·외교적 실리... '비자 면제' 안 할 이유가 없다

중국이 오는 8일부터 내년 말까지 우리나라를 포함한 9개국을 대상으로 무비자 정책을 실시한다. 이에 따라 한국 등 9개국 일반 여권 소지자는 비즈니스, 여행·관광, 친지·친구 방문, 환승 목적으로 15일 이내 기간 중국을 방문할 경우 비자를 발급받지 않아도 된다. 중국이 한국을 무비자 대상에 포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진은 4일 오전 서울 시내 한 중국여행사. 뉴시스

중국이 오는 8일부터 내년 말까지 우리나라를 포함한 9개국을 대상으로 무비자 정책을 실시한다. 이에 따라 한국 등 9개국 일반 여권 소지자는 비즈니스, 여행·관광, 친지·친구 방문, 환승 목적으로 15일 이내 기간 중국을 방문할 경우 비자를 발급받지 않아도 된다. 중국이 한국을 무비자 대상에 포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진은 4일 오전 서울 시내 한 중국여행사. 뉴시스

우선 '경제적 이유'가 첫손에 꼽힙니다. 올해 중국은 '5% 안팎'의 국내총생산(GDP) 성장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2분기(4.7%)에 이어 3분기(4.6%)까지 목표치를 하회하면서 경기 회복에 빨간불이 켜졌습니다. 미중 전략 경쟁 심화와 서방의 경제무역 제재로 수출길이 막히자, 해외 관광객 유치로 활로를 뚫으려는 겁니다.

중국은 이미 지난 연말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20개국에 대해 '일방적 비자 면제'를 시행했습니다. 통상 비자 면제는 양국 간 '상호주의'를 적용하기에, 이는 당시에도 이례적으로 여겨졌죠. 중국 국가이민관리국 통계에 따르면, 일방적 비자 면제 시행 직후인 올해 1~7월 중국을 방문한 외국인은 1,725만4,000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129.9% 증가했습니다. 한국은 비자가 필요할 때에도 중국 방문 1위를 기록한 국가입니다. 중국 입장으로서는 놓치기 아까운 손님이죠.

한반도에 대한 전략적 판단도 분명해 보입니다. 특히 한국만큼이나 가깝고 방문객이 많은 일본은 제외됐다는 점에서, 오로지 한국만을 겨냥한 지점도 읽힙니다. 최근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 등 북러 밀착으로 중국의 심기가 불편한 가운데, 북한에 경고 신호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일타쌍피' 효과도 있습니다. 김흥규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반도에 대해 중국은 균형 외교를 추구해왔는데 그간 전략적으로 열세에 처해있던 북한에 우호적이었다면, 최근 북러 관계가 혈맹 수준에 이르면서 그에 대한 균형을 맞추기 위해 한국에 손짓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미국 대선을 앞둔 발표 시점도 오묘합니다. 윤석열 정부는 '가치외교'를 표방하는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와 함께 한미 동맹에 기반을 둔 한미일 3국 협력에 올인해왔습니다. 중국으로서는 한반도 관리에 불필요한 부담이 더해지는지라 판을 흔들 필요가 있었겠죠. 정재흥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은 "미일 동맹이나 대만 문제에 있어서 훨씬 강경한 입장인 일본보다 한국이 조금 더 약한 고리라고 생각한 것 같다"며 "멀리 내다봤을 때 한국과 인적 교류를 늘리고 우호를 증진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중국의 '전랑외교' 맞수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윤석열 대통령이 5월 2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9차 한일중 정상회의 공동기자회견에서 리창 중국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5월 2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9차 한일중 정상회의 공동기자회견에서 리창 중국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전랑(늑대 전사·Wolf Warrior) 외교'라 불리는 공세적인 중국 외교에, '상호 존중'을 앞세운 윤석열 정부의 강경한 대중 외교가 효과를 본 걸까요? 그간 중국은 국익이 걸려 있다면 주변국에 위협도 불사하는 거친 외교를 펼쳤습니다. 2016년 주한미군 부대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후 중국은 사드 보복, 한한령(限韓令·한류 금지령) 등으로 한국을 압박했죠. 지난해에는 싱하이밍 전 주한중국대사의 "중국 패배에 베팅하면 후회한다"는 이른바 '베팅 발언'으로 한중 관계가 급속도로 얼어붙기도 했습니다.

그간 중국의 공세적 외교에 한국 외교는 이리저리 끌려다닌 면도 적지 않습니다. 외교의 기본은 서로 주고받는 '상호주의'이지만 시진핑 주석은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4년 7월 국빈 방한 이후 10년 넘게 한국을 찾지 않고 있습니다. 임기 내내 시 주석 방한에 공을 들인 문재인 전 대통령이 두 차례나 방중했지만 답방은 없었습니다. '저자세 외교', '굴종 외교' 비판이 나온 까닭입니다.

그랬던 중국이 상호주의도 고려하지 않고 '비자 면제' 카드를 꺼냈습니다. 지난해 2월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국제관계연구실장은 '중국 시진핑 3기 '전랑외교'의 지속과 변화'라는 글에서 "중국의 전랑외교에 대한 타협과 저자세 외교는 중국에 '한국은 밀면 밀린다'는 잘못된 학습효과를 주게 될 것이며 더 강도 높은 압박을 초래할 뿐"이라며 "정부가 지향하는 '상호 존중의 새로운 한중관계' 수립을 목표로 '호혜평등의 양자관계'를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적어도 이번 무비자 조치로 중국 외교의 '강약약강(강한 이에게 약하고 약한 이에게 강하다)' 면모가 재차 드러난 셈입니다.

다만 중국의 일방적 조치를 우리의 외교 성과로 자화자찬하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외교는 국제정세에 따른 지극히 현실적 행위일 뿐, 중국이 철저히 국익에 따라 결정한 것을 두고 한국의 능력과 위치, 기존 '미국 일변도' 외교 노선을 과대평가하는 것이 자칫 오판을 낳을 수 있다는 겁니다.

그보다 앞으로 중국이 점진적으로 전랑외교를 벗어던질지가 새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입니다. 지난 5월 한중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리창 중국 총리가 방한, 3국 정상회의 정례화에 합의하는 등 중국은 최근 들어 적극적으로 주변국과 외교적 관여에 신경을 쓰는 모양새입니다. 한 중국 외교통은 "최근 중국 내 진행된 회의만 해도 과거보다 비판에 자유로워진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며 "비자 면제 조치는 중국이 사회 분위기를 점차 개방적으로 전환하는 움직임의 일환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이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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