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과 통합·의대 증원으로 재수생↑
고3들도 '재수할 수도 있지' 마음가짐
"서울대 마크가 찍힌 물품을 든 학생들도 학원에 다녀요. 많은 상위권 학생들이 수능을 한 번 더 치려나봐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열흘 앞둔 4일 오후 8시.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대형 입시학원에서 만난 연세대 2학년 박모(24)씨가 학원 분위기를 설명했다. 이 학원의 N수생(재수 이상 고교 졸업생 응시자) 전용 공간은 4~6층. 여기 설치된 1,000여 개 사물함이 가득 찰 정도로 재수 이상 수험생이 많다. 자습실엔 300명이 넘는 학생들이 들어차 곧 다가올 수능 공부에 열을 올리는 중이었다. 이 학원 관계자는 "해마다 조금씩 N수생이 증가하는 추세"라며 "특히 올해는 상위권 학생들이 6월쯤부터 반수를 위해 학원을 찾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지방 명문 이공계 사립대를 다니다가 자퇴한 A(20)씨는 정원 1,500명이 늘어나는 의대를 노리고 다시 수험생 대열에 합류했다. 그는 "의대 증원 여파로 주변에서도 수능에 한 번 더 도전해 보려는 친구들이 있다"며 "저도 어떤 의대든 상관없이 의대 진학을 목표로 수능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고교 4·5학년 천지...N수 전성시대
'고등학교는 4년제'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2025학년도 수능에서는 재수 이상 졸업생 응시자가 부쩍 늘었다. 의대 증원 덕분에 상위권 대학생들이 의대를 노리고, 중상위권 학생들이 다시 비의대 상위권 학과에 도전하면서, 수능 재도전으로 인생을 바꿔보겠다는 수요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5일 서울시교육청의 2025학년도 수능 응시생 수 자료에 따르면 올해 수능을 치는 서울 내 졸업생은 4만7,547명(42.9%)을 기록했다. 서울의 졸업생 응시 비율은 3년 만에 5.2%포인트(37.7→42.9%) 증가했다. 올해 전국 응시생 기준 졸업생 비율이 31%인 점을 봐도 서울의 N수생 응시 비율은 특히 높다.
수능 재도전이 증가한 배경엔 2022학년도 수능부터 변경된 '문이과 통합 수능'이 있다. 김원중 대성학원 입시전략실장은 "문이과가 통합되면서 자연계가 수학 때문에 입시에서 유리한 구조가 됐다"며 "재수를 하면 자연계에선 대입이 확실히 쉬워지는 인과관계가 어느 정도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거기에 의대 증원 이슈로 반수생들도 늘었다. 대치동에서 재수학원을 운영하는 전모씨는 "지난해까지 재수생과 반수생 비율 9 대 1이었다면, 올해는 지방 의대에서 더 좋은 의대를 가려고 하거나, 상위권 대학에서 의대 가려는 애들이 반수에 뛰어들어 8 대 2 정도로 소폭 늘었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재수는 필수?
특히 교육열이 높고 입시 경쟁이 심한 서울은 'N수'가 거의 필수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강남구의 한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관계자는 "졸업생 수능 접수 비율이 작년보다 10% 이상 늘었다"고 귀띔했다. 양천구의 한 고등학교는 작년 수능 접수 인원이 401명었는데 올해는 437명으로 증가했다. 이 학교 관계자는 "의대생들이 현재 대부분 집단 휴학을 이어가는 상황이라 그런지 올해는 의대생들의 반수 지원이 많다"고 설명했다.
갈수록 늘어나는 N수생들 때문에 재수학원에 들어가는 단계부터 이미 경쟁이 치열하다. 대치동의 한 독학재수학원 관계자는 "입시 설명회를 하면 고3 학부모들은 이미 내년 재수할 학원까지도 알아본다"며 "유명 재수학원은 합격만 하면 주변에서 축하한다고 할 정도로 제2의 대학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재수학원 관계자는 "작년에만 하더라도 유명 수업 현장 강의를 듣기 위해 대기를 걸어놓은 대기 번호만 1,000번대까지 갔다"고 전했다.
수험생들에게 재수는 더 이상 '부담'도 '짐'도 아니다. 3수생 김모(19)씨는 "작년까지는 그래도 재수 1년 정도만 하면 된다는 분위기였는데, 올해 의대 증원 영향으로 주변 재수생 절반 정도가 3수에 나섰다"고 말했다. 휘문고 3학년 강모(18)군은 "저희 학교 학생들은 수능을 조금 못 보면 재수는 당연히 하는 걸로 굳어졌다"며 "'이번 수능 못 보더라도 다음 수능 잘 보면 되지'라는 마음가짐으로 재수를 무겁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강남구의 한 고등학교의 경우, 한 해 해당 고교 출신 N수생이 고3 학생 수의 두배 가까이 될 정도"라며 "취업이 갈수록 어려워지다보니 전문직 선호 현상이 강화되면서 교육열이 강한 서울에선 재수는 이제 당연시됐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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