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 한문 소설 '최척전'을 연극으로
서울시극단 '퉁소소리' 11~27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겉절이처럼 막 버무린 느낌에 한국의 미 있죠"
"이렇게 기구한 이야기가 말이 되나 싶었는데 꼭 연극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죠."
서울시극단의 단장 겸 예술감독인 고선웅(56) 연출가는 15년 전 전쟁 관련 한국 고전소설을 소개한 '전란의 소용돌이 속에서'라는 책에서 조선 중기 문인 조위한(1567~1649)의 한문 소설 '최척전'을 접했다. 임진왜란과 정유왜란, 후금의 명나라 침입 전란기에 이별과 재회를 반복하는 최척과 옥영 가족의 30년을 그린 대하소설이다. 고 연출가는 기이한 이야기로 치부했다가 위정자의 결정으로 민중이 고통받는 서사의 큰 틀이 오늘날에도 동어 반복처럼 이어지고 있음을 떠올렸다. 그렇게 15년간 마음에 품었던 '최척전'을 공연으로 만들었다. 이달 11~27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선보이는 서울시극단의 신작 '퉁소소리'다. 각색만 6개월 넘게 걸렸다. 제목은 주인공 최척과 아내 옥영을 재회하게 하는 매개가 한국 전통 관악기 퉁소인 데서 착안했다. 최근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난 고 연출가는 "최근 러시아로 파병된 북한 군인 가족에게도 슬프고 기막힌 사연이 있을 것"이라며 "정책 결정자들이 좀 더 지혜롭고 인간애가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퉁소소리'는 민중의 수난사를 절절하게 담으면서도 고 연출가 특유의 골계미가 있는 작품이다.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회란기' 등에서 비극과 해학의 정서를 넘나든 그는 "슬픈 일이 있을 때에도 웃긴 일이 함께 벌어지고, 웃고 있지만 눈물이 나는 게 인간사"라며 "슬픔과 기쁨의 감정이 전광석화처럼 오가는 느낌의 연극에서 재미를 느낀다"고 말했다.
'퉁소소리'는 "거친 연극"이기도 하다. 중국, 일본, 베트남 등 여러 나라와 바다, 산 등을 오가며 펼쳐지는 방대한 서사를 배우 20명이 1인 7, 8역을 소화하며 2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풀어낸다. 고 연출가는 "정교한 연출에는 정교한 만큼의 허점이 드러나게 돼 있다"며 "겉절이처럼 막 버무린 느낌에 한국의 미가 있다"고 말했다. 퉁소를 포함해 거문고, 가야금, 해금, 타악기 등 전통 국악기로 꾸린 5인조 악단의 라이브를 곁들여 한국적 정서를 극대화했다.
"더디고 장황한 연극, AI시대에도 살아남을 것"
2022년 9월 서울시극단을 맡아 예술감독으로 보낸 지난 2년은 고 연출가에게 아쉬움이 남는 시간이다. '연안지대'(김정 연출), '키스'(우종희 연출), '트랩'(하수민 연출) 등 신작 번역극을 발굴했지만 창작 신작을 의뢰하고 무대에 올리기에 3년의 임기는 너무 짧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가 한국 고전을 창작에 가깝게 각색한 '퉁소소리'에 대한 기대감이 큰 이유이기도 하다. 그간은 미국 작가 마샤 노먼의 '게팅아웃', 프로스페르 메리메의 '카르멘', 입센의 '욘' 등 모두 서양 희곡을 연출했다. 그는 "관객이 '퉁소소리'를 통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삶을 살아내는 '한국의 유전자', '조선의 피'를 느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시공간 변화가 많은 '최척전'은 영화로는 매끄럽게 옮길 수 있는 소설이지만 무대로 옮기기엔 번잡하고 장황한 측면이 있다. 고 연출가는 '블록버스터'라는 표현도 썼다.
"미련하게 보이는 이 더디고 번거로운 일을 연극인들은 인간의 실존 문제를 고민하면서 엄청난 보람과 사명감을 갖고 하지요. 인공지능(AI)이 모든 것을 대체하는 시대에도 그래서 연극의 자리는 오래갈 것으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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