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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을 버릴 수도... '무플' 민심의 최후 경고

입력
2024.11.07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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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연합뉴스

그해 겨울은 춥지도, 얼어붙지도 않았다. 국민이 위임한 권력의 고귀함을 스스로 저버린 지도자를 심판하려는 분노가 들끓었다. 이 땅의 진짜 주인임을 선언하며 민주주의의 새 씨앗도 심었다. 수능을 코앞에 둔 수험생부터, 데이트 나온 청춘들, 유모차를 끌고 아이 손을 잡고 나온 젊은 부부들, 박근혜 정부의 버팀목이 돼 왔던 5060 장년층까지. 보수 진보 가릴 것 없이, 다시 피어날 대한민국의 봄을 뜨겁게 노래했고, 끝끝내 쟁취했다.

희망은 오래가지 못했다. 고작 8년 만에 '탄핵'이란 유령이 대한민국을 서성이고 있다. 그 단어가 입에 오르내리는 것만으로도 절망이고, 비극이다. 우리는 또 촛불을 들어야 하나.

폭넓은 민심을 들어보고자, 정치와 거리두기 중인 중도 성향의 정치 '저관여층'에 물었더니 반응은 대체로 비슷했다. '대통령에 기대를 접은 지는 이미 오래. 그렇다고 거리로 나가 또 에너지를 쏟고 싶은 마음은 아직.' "이제 더는 욕할 기운도 없다"는 40대 회사원은 대통령 부부를 향한 심경을 두 음절로 정리했다.

"무.플."

그때도, 지금도 분노의 출발점은 다르지 않았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선출된 권력을 주무를 때" 민심은 치를 떤다.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던 대통령의 부인이 '철없는 오빠'를 방패막이 삼아 권력을 향유한 정황에 국민들은 최순실을 떠올리며 몸서리치는 중이다.

헌재가 내린 '단죄' 사유는 분명했다.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인 공무원이 최순실의 이익을 위해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남용해 헌법을 위배했기에 파면한다.' 국민과 공익을 위해 쓰여야 할 권력을 사유화했다면 그게 탄핵 사유란 것이다. 임기 내내 나라와 국민 대신 아내의 이익에 복무하는 선택을 해온 대통령이 자유로울 수 없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아직 뛰쳐나오지 않고 있다. 왜일까. 30대 후반 공무원은 "또 탄핵이어야만 하느냐"고 되물었다. 대한민국 모든 에너지를 갈아 넣은 대가가 '다시 탄핵'이라면 우습지 않냐면서다. 탄핵을 한번 해봤기에, 더 신중해진 '학습효과'다. "근데 왜 탄핵을 민주당이 먼저 떠드느냐"(40대 초반 교사)는 반문도 더해졌다. 결국 '이재명 대통령 만들기 프로젝트' 아니냐는 의구심이다.

8년 전 탄핵을 밀고 이끈 건 국민이었다. 정치인은 단상에서 마이크도 못 잡았다. 지금은 여의도가 앞장서 부추기는 모양새니 반감만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정권을 그냥 두고 보겠다는 건 아니지만, 지금 당장 탄핵까지 나설지는 "반신반의"라는 것이다.

뽑을 때부터 잘할 거란 기대조차 희미했지만, 생각보다 너무 못해서 욕을 하다 지쳐 '악플'조차 달고 싶지도 않은 '무플' 민심. 용산이 가장 두려워해야 할 건 무섭도록 고요한 이들의 침묵 아닐까.

대통령은 오전 10시부터 끝장 회견에 나선다. 아내와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한 치의 거짓 없이 고해성사하고,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 과거의 죄를 규명하고, 미래의 죄를 막을 대책도 내놔야 한다. 이번만은 '박절하게' 독해져야 한다.

"(아내를) 버리지 못하면? (대통령이) 버려질 수밖에 없지."

'무플' 민심이 전하는 마지막 경고를 흘려보내지 않길 바란다. 한겨울, 거리로 또 뛰쳐나가기엔 국민들은 하루하루 먹고사는 것만으로도 너무 지치고 바쁘다.


강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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