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남방송·軍소음 피해 강화 포천 르포]
대남방송 소음에도 당국 실질 대안 없어
사격장 소음으로 포천 농가도 피해 막심
"쉼터 확대·농산물 우선 구매 고려해야"
"대북전단은 말리지도 않고, (우리보고) 소음제거 이어폰이나 끼라고요?"
1일 오전 11시 인천 강화군 당산리 마을회관. 북한 쪽에 설치된 대남방송 스피커가 한눈에 보이는 이곳에서 주민 허옥경(58)씨가 목소리를 높였다. 대남방송 대책 마련을 위해 국방부, 인천시 등이 모인 간담회 도중 관계자들이 "소음 차단창 설치 등은 법적 근거가 없어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대신 노이즈캔슬링(소음제거) 이어폰을 사용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물은 것이다. 간담회 중에도 바깥에선 뱃고동 소리 같은 소음이 끊임없이 들렸다. 허씨는 "이어폰 착용하고 하룻밤만이라도 여기 소음을 경험해보라"며 코웃음을 쳤다.
북한과 약 1.8㎞ 떨어진 접경지역에 거주하는 허씨는 지난달 24일 국정감사장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무릎 꿇고 소음 피해를 호소했다. 이날도 연차를 쓰고 직장에 빠진 채 간담회에 참석했다. 이렇게 적극 나서는 이유는 하나다. 북쪽 스피커에서 하루 종일 들려오는 기괴한 소음에 주민들은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운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만족할 만한 대책을 내놓지 못해서다. 남북 긴장이 커지며 잦아진 군사 훈련으로 사격 소음 등이 많아진 군부대 밀집 지역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6월 말부터 시작된 북측의 대남방송은 접경지역 주민의 일상생활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대형 스피커에서 낮에는 기계·사이렌 소리, 새벽에는 귀신 소리가 나온다. 수면제를 처방받거나 밭에 심어 놓은 작물을 캐기 위한 외출조차 중단하는 이들이 생겼다. 허씨의 이웃 안미희(37)씨는 "초등학교 1학년 아이의 수면에 차질이 생겨 수업 시간에 매일 졸고 있다고 하더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주민들은 당장 대책이 필요한데 지자체 대응이 굼뜨다고 주장한다. 시민단체들이 대북전단을 띄울 때마다 대남방송 소음이 커졌다며 수개월간 전단 살포 금지를 요청했는데 강화는 이달 1일에야 전단을 띄울 수 없는 위험구역으로 설정됐다. 이마저도 차선책일 뿐이다. 종인선 송해면장은 "제대로 잠을 잘 수 있는 정도의 대안이 제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격 소음에 가축 사산
농축산업 농가가 밀집한 군부대 인근 지역에선 군 소음이 생계에 타격을 주고 있다. 경기 포천시 영중면에서 농가를 운영하는 유승태(71)씨는 1995년부터 미군 사격장과 4㎞ 거리에 위치한 농가에서 가축을 길렀다. 2019년쯤부터 농가에서 키우던 개들의 사산율이 높아졌다. 유씨는 미군이 사격 위치를 바꾸면서 농장과 사격 지점 거리가 400m가 안 될 정도로 가까워졌기 때문으로 추정한다. 게다가 이곳 일대에서 6년간 중단됐던 주한미군 사격훈련이 지난달 중순부터 재개돼 걱정이 늘었다. 갈수록 심해지는 소음에 유씨는 올해 3월 국방부 국민신문고에 청원을 넣었으나 감감무소식이다. 지난달 31일 농가에서 만난 유씨는 "토지대장에 '군소음보상지역' '가축사육제한구역'이라고 쓰여 있어 땅이 팔리지도 않아 다른 곳에 농가를 세울 수도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강태일 포천군소음대책위원장은 "생계 활동이 가로막힌 주민 피해를 지자체가 보상할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전문가들은 접경지역과 군부대 밀집 지역 소음과 피해 실태를 세밀히 파악해 지원해야 한다고 말한다. 군사·외교안보 전문가인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은 "군부대의 지역 농가 상품 우선 구매나 소음에서 벗어날 수 있는 쉼터 확대 등이 필요하다"며 "재원은 특별교부금을 통해 충당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법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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