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정책연구원 '트럼프의 귀환' 보고서
"반도체 기술...생존 기술로 활용해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재집권에 성공하면서 우리나라의 산업과 통상 환경에도 변화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세계적 보호무역 기조 아래 강력한 온쇼어링1 과 강력한 대중(對中) 견제가 예상되는 만큼 한국은 제조 산업 정책 전반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국책연구원의 경고가 나왔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이 7일 발표한 '트럼프의 귀환, 한국이 직면한 과학기술 혁신의 위기와 기회' 보고서에 따르면 트럼프 2기 정부가 들어선 미국에서 연구개발(R&D) 투자가 줄고 혁신은 지체될 것으로 봤다. R&D 자금을 늘리는데 부정적이었던 지난 집권 당시 기조가 이어진다면 이번에도 정부 R&D 예산을 감축할 수 있다는 말이다. 다방면에 걸쳐 중국과 치열하게 경쟁하고 갈등이 깊어지면 동북아 역내 군사 충돌 위기도 높아질 것으로도 봤다. 연구팀은 "트럼프 정부가 동북아를 포함한 대부분 외교 문제에 있어 고립주의를 택할 것으로 보인다"며 "(이 과정에서) 힘의 논리가 강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보고서는 트럼프가 외쳐 온 미국 내 제조업 부흥 정책을 감안하면 제조업 비중이 큰 한국은 산업 정책을 전반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세계화의 황금기에 만든 정부 산업 정책과 기업 전략은 반드시 수정해야 하며 국가 별 맞춤형 대응책과 전략적 제조업 보호 조치를 고민할 때"(이현익 부연구위원)라는 지적이다.
연구팀은 특히 '위대한 미국'을 부활시키기 위해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온쇼어링 범위를 첨단 반도체 제조뿐 아니라 레거시(구형) 반도체 제조 시설로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한국을 향해 대중 제재에 동참할지 분명하게 입장을 밝히라는 요구와 함께 이를 방위비 분담 등 안보 문제와 연계시켜 다룰 수 있다고도 전망했다. 트럼프는 불법 이민에 무관용 정책을 고수하지만 6월 '올인 팟캐스트'에 출연해 "(미국 내) 대학을 졸업하면 미국에 체류할 수 있도록 자동적으로 영주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국내 고급 인재 확보가 더 어려워질 수 있는 대목이다.
'반도체 기술도 있고 방위비도 내는 한국' 어필하라
연구팀은 그러나, 모든 걸 강박적으로 협상 테이블에 놓는 트럼프의 성정을 잘 읽어내 기회를 포착할 수도 있다고 제안했다. 트럼프가 뱉었던 말을 곱씹어 협상에 역이용하고 '적의 적은 친구'를 교훈삼아 틈새를 공략하라는 주문이다.
그의 강력한 대중국 견제 정책은 국내 제조업에 반사이익을 줄 수 있고 "과거에는 일본, 현재는 대만이 우리 반도체 산업을 전부 가져갔다"(7월 18일 연설 중)는 발언은 한국에 유리한 거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고 연구원은 진단했다. 이현익 부연구위원은 "후보시절 트럼프는 '대만은 우리 반도체를 모두 가져갔고,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미국에 방위비를 내야 한다'고 말한 적 있다"며 "이 말을 뒤집어 우리나라는 반도체 기술을 갖고 방위비도 낸다는 점을 강조하며 협상에 유리하게 이용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2025년 들어설 미 국립반도체기술센터(NSTC)에 우리나라가 적극 참여해 미국 주도 기술개발 협력 체계에 편입하되 다른 국가와 독자 협력체계 구축을 병행해야 하는 게 과제라고 보고서는 조언했다.
이 부연구위원은 "존 햄리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소장이 '한국의 취약성은 협소한 상상력에서 나온다'고 한 적이 있다"며 "무엇을 상상하든 트럼프 2기 정부는 그 이상을 보여줄 수 있고 지금은 정책적 상상력을 발휘할 때"라고 말했다.
- 1 온쇼어링
- 해외 제조 시설을 본국으로 옮기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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