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원 14곳은 수요 없어 연장진료 안 해
코로나19 대응 이후 병상 이용률 반토막
일부 과 휴진에 접근성 취약해 이용 불편
"사회 안전망 위해 행정·재정적 지원해야"
올해 2월 전공의 집단 이탈 이후 정부가 의료 공백을 막기 위해 지방의료원에서 평일 야간과 주말·휴일에 연장 진료를 시행했지만 이용자는 극소수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월간 연장 진료 건수가 ‘0’인 경우도 허다했다. 의사가 없어 휴진 중인 진료과목이 적지 않은 데다 접근성이 떨어지는 탓에 환자들에게 외면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지역·필수의료 중추인 공공병원이 사회 안전망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발전 전략을 제시하고 재정 지원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7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허성무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받은 ‘3~8월 지방의료원 연장 진료 현황’ 자료를 보면 서울의료원, 경기도의료원 수원·안성·의정부·파주 병원, 성남시의료원, 서귀포의료원, 청주의료원, 강진의료원, 순천의료원 등 상당수 지방의료원에서 평일 야간(오후 5시 30분~8시)과 주말·휴일 진료 건수가 대부분 월 10건 미만이었다. 청주의료원 3, 6, 7월에, 경기도의료원 의정부병원은 6, 7월에, 서귀포의료원은 8월에 각각 0건이었고, 심지어 순천의료원은 4월부터 8월까지 연장 진료 이용 환자가 한 명도 없었다.
진안군의료원은 월 연장 진료 건수가 최대 59건(3월)에서 최소 25건(6월), 인천의료원은 최대 63건(5월)에서 최소 17건(3월)으로 사정이 나은 듯하지만, 하루 평균 환자 수를 따져 보면 2명이 채 되지 않는다. 그나마 지방의료원 35곳 가운데 부산, 원주, 강릉, 속초, 영월, 삼척, 충주, 홍성, 서산, 목포 등 14개 의료원은 아예 연장 진료를 운영하지 않았다. 수요가 없기 때문이다. 의료 취약지에서 버팀목 역할을 해야 할 지방의료원이 처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통계다.
정부는 올해 상반기 두 차례에 걸쳐 예비비 약 2,000억 원을 편성해 의료진 당직수당 등 인건비를 지원했다. 공공병원 연장 진료 운영비 134억 원도 포함됐다. 전체 예산 대비 큰 금액은 아니지만 이미 다 소진돼 일부 의료원은 지자체와 협의해 연장 진료를 중단한 것으로 파악됐다. 수도권 A의료원 원장은 “환자가 찾지 않아도 정부 지침이 내려오고 예산이 배정되니 형식적이나마 진료실 문을 열어놓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환자들이 지방의료원과 멀어진 결정적인 원인은 코로나19 팬데믹이다. 2017~2019년 전체 지방의료원 병상 이용률은 평균 80.9%에 달했지만 2020년부터 3년간 코로나19 환자 치료를 전담하면서 일반 환자를 받지 못해 종합병원으로서 진료 기능이 크게 위축됐다. 코로나19가 끝난 뒤에도 환자들이 돌아오지 않아 지난해 전체 지방의료원 병상 이용률은 평균 42.9%에 불과했고 올해 1~8월에도 55.7%에 그쳤다(지방의료원 결산서). A원장은 “의사 집단행동으로 대학병원에 못 가는 환자들이 민간 종합병원을 찾아가지 지방의료원으로 오진 않았다”며 “이러다 의료원 운영을 포기하는 지자체가 나올까 우려된다”고 토로했다.
환자가 지방의료원을 방문해도 의사가 없어 진료받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올해 9월 기준 지방의료원 20곳에서 총 40개 진료과에 공백이 발생했다. 속초의료원은 지난해 11월부터 이비인후과, 피부비뇨기과, 신경과, 가정의학과가 휴진 중이고, 울진군의료원은 신경과, 재활의학과, 안과, 피부과, 비뇨의학과가 환자를 받지 못한다. 삼척의료원은 2022년 호흡기내과를 폐지했다. 강원 지역 B의료원 원장은 “최근에 소화기내과 전문의가 사직서를 내 12월부터 내시경 진료가 중단될 위기”라며 “연봉 4억 원에 구인 공고를 냈는데도 지원자가 없다”고 토로했다.
취약한 접근성은 또 다른 문제다. 일부 지방의료원은 생활권에서 떨어진 외진 곳에 위치해 이용하기 불편하다. 일례로 천안의료원은 앞뒤로 경부고속도로와 산림에 둘러싸인 채 덩그러니 서 있고, 제주의료원은 한라산 중턱에, 충주의료원은 계명산 자락에 있어 대중교통으로 가기 어렵다. 인천의료원도 도심이 아닌 산업단지 한가운데 있다.
의료 취약지를 지키는 지방의료원이 제 역할을 해야 지역·필수의료가 살아날 수 있는 만큼 정부가 재정적·행정적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올해 상반기에 경영혁신 지원금 명목으로 948억 원을 배분하고 내년 예산안에 지역거점병원 기능 특성화 및 감염병 대응 목적으로 지방의료원 운영비 441억 원을 배정했지만, 올해 상반기에만 전체 진료 적자 규모가 2,600억 원(보건의료노조)에 달하는 상황을 고려하면 지원이 턱없이 모자라다.
조승연 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장은 “공공병원은 소방, 경찰, 국방처럼 사회 안전망 역할을 해야 하는데 재정을 축내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다”며 “비용 대비 효율이 아니라 서민 삶의 질 향상, 안전 보장 등에 가치를 두고 평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허성무 의원도 “의료개혁 1차 실행방안이 상급종합병원 체질 개선과 의료전달체계 정상화에 집중했다면, 2차 실행방안에는 지역·필수의료를 위해 지방의료원의 경영 위기 개선, 접근성 강화, 지역 의료인력을 공급할 공공의대 설립 방안을 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