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다니요. 걱정됩니다. 상황을 너무 잘 알고 있고 협력하자 했더라도 딜을 잘하니 마음속에 뭔가 그리고 있겠죠. 정신 바짝 차려야 합니다."
미국 대선에서 승리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한국의 세계적 군함과 선박 건조 능력을 잘 알고 있고 미국의 조선업에 한국의 도움과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조선업계 한 임원은 올 게 왔다고 했다.
통상 당선 뒤 해외 정상과의 첫 통화에서는 축하 인사 정도 나누기 마련인데 트럼프는 달랐다. 이례적으로 특정 산업 얘기를 꺼낸 것. 더구나 상황을 꿰뚫고 있다는 점이 예사롭지 않았다. 현재 미 해군에 필요한 군함과 함정의 보수·수리·정비(MRO)는 40%만 제때 이뤄질 만큼 늦다.
이날 국내 조선업계 빅3인 HD현대중공업(+15.13%), 삼성중공업(+9.17%), 한화오션(+21.76%) 모두 주가가 크게 뛰며 주주들은 기뻐했지만 재계 분위기는 다르다. 4년 만에 백악관에 입성하는 트럼프가 한국 정부와 기업들에 무엇을 달라고 할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트럼프가 자주 쓴 빨간색 모자에 새겨진 문구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다. 2016년 대선부터 썼던 이 슬로건 속에는 미국이 과거 영광을 되찾기 위해 일자리 창출, 세금 감면, 무역 정책을 재조정할 수 있다는 뜻이 담겼다. 트럼프는 미국 제조업을 부활시키고 해외로 간 일자리를 되돌려 놓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제조업 담당 대사(Manufacturing ambassador)' 임명 카드를 꺼냈다. 이 대사의 임무는 전 세계를 다니며 주요 제조업체들에 짐 싸서 미국에 오도록 설득하는 것이라 했다. 트럼프는 자신에게 투표하면 "중국에서 펜실베이니아로, 한국에서 노스캐롤라이나로, 독일에서 조지아로 제조업의 대규모 엑소더스를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첫 번째 대통령 임기 4년을 겪어 본 우리는 트럼프의 이런 사자후가 공염불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잘 안다. 트럼프 역시 지난 임기 동안 한국과 한국 기업을 경험한 데다 상·하원까지 공화당이 다수당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아 그의 독주를 가로막을 장치가 없다. 재계는 더 막강해진 트럼프를 상대해야 한다. 문제는 "마른 수건 짜 내듯, 탈탈 털었다"는 한 대기업 임원의 말처럼 우리 기업들이 바이든 정부에서 미국에 꽤 많은 투자를 했고 곳곳에 새 공장을 짓고 있어서 더 이상 꺼낼 카드가 여의치 않다는 것이다. 그나마 현 정부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반도체지원법(칩스법) 등 지원금, 보조금이라도 준다 했지만 트럼프의 새 정부에서는 이를 기대하기 쉽지 않다. 트럼프는 IRA를 "녹색 사기"라 비난했다.
그 어느 때보다 정부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재계 곳곳에서는 트럼프가 방위비 협상, 관세, 기업 투자 유치 등을 연결할 가능성을 예상한다. 훨씬 더 복잡해진 방정식을 치밀하고 냉정하게 풀어야 하는데 한국 정부는 그럴 준비가 됐나. "다자회의에서 관계 맺은 미국의 여야 상·하원 의원들이 윤 대통령과 트럼프는 케미가 맞을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과 다리를 잘 놓겠다고 했다. 그러니 저는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7일 기자회견 발언을 보면 너무 많은 걸 잃어버리지 않을까 걱정만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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