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오래전에 본 영화 ‘장군의 딸’(1999년)은 ‘강간보다 더 끔찍한 일’을 당했다는 묘한 증언을 토대로 전개에 대한 궁금증을 일으켰다. 미 육군 엘리트 장교 엘리자베스의 죽음을 추적하는 내용. 수사 과정에서 그가 육사 생도 시절, 동기들에게 윤간을 당한 일이 드러난다. 그런데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건 윤간 그 자체가 아니었다. ‘강간보다 끔찍한 일’은 극 후반부에 모습을 드러낸다.
□ 스포일러를 하자면, 거물 군인인 엘리자베스의 아버지는 윤간으로 만신창이가 된 딸에게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 “사건을 덮자”고 했다. 성폭행보다 더한 일은 ‘배신’. 즉 극중 아버지로 상징화된 조직적 은폐와 가해자 비호였다. 세상은 지독히도 변하지 않고, 한국의 현실에서도 이런 일은 여전하다. 가해자를 감싸는 군 조직에서 고통 받다 23세의 나이에 목숨을 끊은 고 이예람 중사 사건은 국민들에게 응어리로 남아있다.
□ 사실 피해자들의 권리 의식은 과거보다 높다. 움츠리고 참기보다 가해자가 합당한 처벌을 받도록 신고하는 쪽을 택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정조’ 관념이 지배하던 시대가 저물며, 피해자조차 자신을 혐오하게 하던 관념의 족쇄는 덜어냈다. 하지만 조직 권한을 쥔 이들(주로 남성들)의 관념은 상당수 여전히 과거에 머문다. 이 지점에서 ‘강간보다 끔찍한 일’이 수없이 발생하고 있다.
□ 지난 4일 국방과학연구소 성폭력 피해자가 2차 가해를 당해 투신, 중상을 입었다. 가해자 징계를 담당하는 징계위원장, 징계위원이 “정신과 약 먹고 착란이나 망상이 있는 것 아니냐” “(가해자와) 각별한 사이 아니냐”고 피해자를 모욕해서다. 성폭행 미수 사건인데도, 가해자는 고작 정직 1개월 처분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이미 고충처리위원회에서 CCTV 등을 통해 사실관계가 인정된 상황에서 이례적으로 징계위원회에 피해자를 출석하게 했다. 성범죄를 완전히 막을 순 없다. 그렇다면 조사·징계 담당자라도 ‘잠재적 성범죄자’를 제외할 장치를 두라. 필기시험이라도 봐서, 피해자에게 ‘착란 증세’ 운운할 사람을 걸러내야 할 판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