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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 개의 냄새 식별, 인류 미각·후각 진화의 비밀

입력
2024.11.14 04:3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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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환석
이환석한림대 의료·바이오융합연구원 R&D 기획실장·교수

편집자주

알아두면 쓸모 있을 유전자 이야기. 바이오 산업의 새로운 혁신과 도약으로 머지않아 펼쳐질 미래 유전자 기반 헬스케어 전성시대를 앞서가기 위한 다양한 기술 개발 동향에 대한 소개와 관련 지식을 해설한다.

흑백요리사. 넷플릭스 제공

흑백요리사. 넷플릭스 제공


요리와 함께 시작된 인류 미각
날것의 맛도 관여하는 유전자
미각이 아닌 통증, 온도도 영향

최근 '흑백요리사'라는 요리 경연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끌며 방영된 바 있다. 일본과 미국의 유사 프로그램들과는 다르게 '오징어 게임' 드라마처럼 많은 참가자들이 서바이벌 방식으로 경연하는 점도 성공 요소였다. 콘텐츠 시장에 수많은 '먹방 유튜버'들이 활동하고 여행 유튜버들도 관광 명소보다는 현지 맛집 탐방에 많은 양을 할애하는 현상을 보면 요리라는 주제가 대유행임을 상기하게 된다.

대부분 '불'을 사용하게 되므로, '요리'는 인류가 다른 생물들과 차별되는 대표적 특징 중 하나를 활용하고 있는 매우 고차원적이고 '인간'적인 행위이다. 인류는 아주 오래전 불을 사용하기 전에는 요리를 하지 않고 먹었을 것이다. 이후 언젠가부터 요리된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는 것이므로 인간 유전자들에도 무언가 변화가 있었을 것이라는 의미가 된다.

그렇다면 안성재 요리사가 강조한 '익힘' 정도라는 것도 유전자와 관련 있을 수밖에 없다. 미슐랭 스타 요리사들의 미각만이 아니라 생물학적으로는 다른 동물들과 달리 인간의 소화기관에서만 작동하는 그리고 일반인들도 모두 보유하고 있는 '인간' 유전자들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아쉽게도 그 유전자들이 무엇인지 다른 동물들과 어떻게 다른지에 관한 연구는 크게 알려진 바가 없다. 불에 익힌 고기와 날고기를 소화하고 대사하는 과정이 다를 것은 분명하고 우리가 음식 재료들을 날로 먹으면 탈이 나기 쉬우니 관련 유전자들의 활동도 다를 텐데 조속히 그 차이점이 밝혀지면 좋겠다.

후각 시스템

후각 시스템

반면 요리하기 전인 날것의 음식들에 대해서는 꽤 여러 가지 흥미로운 관련 유전자들이 알려져 있다. 가령 오이의 쓴맛을 느끼는 과정에는 염색체 7번의 TAS2R38이라는 유전자가 관여한다. 이 유전자 염기 서열에 따라 만들어지는 단백질의 49번-262번-296번째 아미노산이 각각 P-A-V인 유형과 A-V-I인 유형이 있는데 PAV 유형은 AVI 유형보다 오이 쓴맛을 100~1,000배 정도 더 심하게 느낀다고 한다.

또 고수의 비누 맛을 느끼는 과정에는 염색체 11번에 있는 OR6A2라는 유전자가 관여한다. 이 유전자는 알데히드 화학물질을 감지하는데 이 유전자 주변 염기 서열 하나의 차이로 고수에서 비누 맛을 심하게 느끼느냐 아니냐가 정해지게 된다.

한편 우리가 흔히 '맛'이라고 생각하는 느낌 중에는 미각이 아니라 통각인 경우도 있는데, 매운맛이 대표적이다. 캡사이신은 미각이 아니라 온도 특히 열 감각 수용체인 TRPV1 유전자에 의해 '느껴지는데' 섭씨 43도 이상의 온도일 때 활성화되는 수용체가 고추 등에 있는 캡사이신이 결합하면 온도와는 상관없이 타는 듯한 통증을 느끼게 되며 그걸 우리는 매운맛으로 인지하게 되는 것이다.

최근 유행하는 '민초' 즉, '민트 초코'의 민트 '맛'도 미각이 아니라 온도와 관련된 감각 기능이다. 민트 맛은 멘톨 성분인데 염색체 2번에 있는 TRPM8 유전자에 의해 느껴진다. 섭씨 10도에서 26도 이하의 온도일 때 활성화되는 수용체가 멘톨이 결합하면 활성화돼 온도와 상관없이 시원한 느낌을 느끼게 된다.

원래 미각이나 후각 모두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발달해 온 기능들이므로 통각이나 열 감각처럼 다른 방어 기능들과 혼용돼 느껴지는 현상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은 아니다. 인간은 약 1조 개의 냄새를 구분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각 개인은 그중 일부만을 인지할 수 있다. 마치 인간이 100경 개가량의 다른 항체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각 개인은 그중 일부만 만들 수 있는 것과 유사한 현상이다.

인류가 위험을 인지하던 감각들을 문화, 예술, 음식 등에 활용하며 평화와 안전을 향유할 수 있는 시대가 계속 이어지기를 소망해본다.

이환석 한림대 의료·바이오융합연구원 R&D 기획실장·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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