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금감원 제동에 일주일 만에 철회 결정
이사회 의장직은 사임, 사내이사 직은 유지할 듯
시장 "지배구조 개선 명분 가져오겠다는 전략"
고려아연이 일반공모 유상증자(유증) 계획을 14일 만인 13일 전격 철회했다. 최윤범 회장은 이 날 "이사회 의장직을 내려놓겠다"는 뜻도 밝혔지만 경영권은 계속 유지한다. 이는 최 회장 측이 지분 격차를 뒤집는 계획은 접고 임시 주주총회 표 대결에서 영풍·MBK파트너스(MBK) 연합에 앞서기 위한 명분 쌓기와 투자자 설득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풀이된다.
고려아연은 이날 오전 임시 이사회를 열고 유증 철회를 결정했다. 고려아연 측은 "지난달 30일 일반공모 유상증자를 결의할 당시에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주주와 시장 관계자의 우려 등을 지속적으로 경청하고 이를 겸허한 마음으로 수용했다"며 배경을 설명했다.
앞서 6일 금융감독원은 고려아연의 일반공모 유상증자 계획을 "투자자에게 중대한 오해를 일으킬 수 있다"며 증권 신고서를 정정하라고 제동을 걸었다. 고려아연은10월 30일 자사주 소각 후 발행주식 전체의 20%에 이르는 보통주 373만2,650주를 주당 67만 원에 일반 공모 형태로 신규 발행하겠다고 밝혔었다.
그러면서 고려아연은 유증 조달 금액의 대부분이 차입금 상환에 쓰인다고 밝혔다. 하지만 시장은 최 회장 측이 3, 4%가량 우호 지분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는 묘안을 낸 것으로 받아들였고 비판이 쏟아졌다. 주주 가치를 높이겠다며 자기주식을 공개매수한 직후 이와 반대되는 성격의 유상증자를 갑작스럽게 발표한 것이 납득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주주들은 경영권 분쟁에서 지분율 우위를 점하기 위해 회사가 돈을 빌리고는 주주에게 그 빚을 갚게 한다는 비판을 쏟아냈다. 결국 금융 당국이 칼을 빼들자 고려아연은 이날 유증 계획을 거둬 들였다.
최 회장은 이날 한 달여 만에 다시 기자회견을 열어 "이사회의 독립성 강화, 소액주주 보호와 참여를 위한 방안을 추진해 주주와 시장의 목소리에 더욱더 귀를 기울이는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며 "이사회 의장과 대표이사 분리에 이어 독립적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최 회장의 깜짝 발표를 두고 시장은 영풍·MBK 연합이 제시한 지배 구조 개선의 명분을 약화시키겠다는 전략으로 받아들였다. 이날 최 회장은 이사회 의장직에서는 물러난다고 밝혔지만 고려아연 경영을 맡는 사내이사 직 유지 여부는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MBK 연합은 9월 고려아연 공개매수에 나서면서 지배구조 개혁을 강조했다. 특히 김병주 MBK 회장은 4일 자신의 이름을 딴 도서관 착공 행사에 참석해 고려아연 인수에 나선 배경을 "지배 구조와 주주 가치"라고 강조했다.
이르면 연말 임시주주총회에서 분쟁 판가름 날 듯
이제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은 이르면 연말 열릴 임시 주총 의결권 대결로 판가름 날 전망이다. 현재 MBK 연합은 고려아연 공개매수 종료 후 장내 매수를 통해 지분 1.36%를 추가로 얻어 최 회장 측과의 지분 격차를 5%포인트 넘게 벌렸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현재 MBK·영풍 연합의 고려아연 지분율은 39.83%, 최 회장 측 지분은 약 34.65%로 추산된다.
고려아연은 주주구성이 확정된 뒤 열리는 주총에서 단기적 투자 수익 회수보다는 기업의 장기적인 경쟁력과 비전을 앞세워 주주들의 현명한 판단을 구한다는 방침이다. 이날 최 회장은 유증 철회를 공식 사과하면서도 경영권을 지키겠다는 뜻은 고수했다. 최 회장은 "회사의 장기적 성장과 발전을 믿고 주주 가치 제고를 위해 무엇이 옳은 길인지 합리적 선택을 해오신 주주분들과 함께 다가올 주주총회에서 승리해 회사를 지켜내겠다"고 말했다.
영풍·MBK 연합은 이날 "자본시장 관계자들과 고려아연 주주들, 임직원 및 일반 국민들은 고려아연 측 자기 주식 공개 매수와 유상 증자까지 일련의 과정을 통해 최윤범 회장의 전횡으로 고려아연의 운영·감독 체계인 거버넌스가 얼마나 훼손됐는지 직접 목격했다"고 쏘아붙였다.
한편 금감원은 고려아연의 유상증자 철회 결정에도 조사한다는 방침에는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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