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서점서 쫓겨난 노숙인 시절, 책 건넨 은인 찾는다" 유명작가의 고백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단독 "서점서 쫓겨난 노숙인 시절, 책 건넨 은인 찾는다" 유명작가의 고백

입력
2024.11.14 12:30
수정
2024.11.14 15:50
23면
0 0

소재원 작가,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
2002~2003년 서점서 사흘 내내 독서
서점 직원이 이청준 '당신들의 천국' 선물
"제 작품 선물하겠단 약속 지키고파"

2016년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다룬 소설 '균' 출판 당시 한국일보와 인터뷰 중인 소재원 작가. 홍인기 기자

2016년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다룬 소설 '균' 출판 당시 한국일보와 인터뷰 중인 소재원 작가. 홍인기 기자

"21년 전 노숙인 시절 은혜를 베풀어주신 은인을 찾고 있습니다."

지난 13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이 같은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자신이 노숙인이었던 시절 서점에서 사흘 동안 책을 읽다가 '냄새 난다'며 쫓겨난 적이 있는데, 그때 자신에게 못다 읽은 책을 선물해 준 서점 직원을 찾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한 서점서 사흘 내내 같은 책 읽어"

이 글을 쓴 인물은 영화 '터널' '공기살인' '소원' 등의 원작자인 소재원 작가다. 소 작가는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보내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상경한 뒤 노숙 생활을 했다.

소 작가는 14일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고등학교 졸업 직후인 스무 살 때 상경했으니 2002년, 2003년쯤 됐을 것"이라며 "사기를 당해서 노숙을 시작했는데, (장소가) 서울역인지, 영등포역 또는 용산역 쪽인지 잘 모르겠다"고 기억했다.

소 작가는 "달리 갈 곳도 없었고, 책을 읽을 수 있는 서점이 유일한 여가 장소여서 사흘 내내 서점에 갔다"고 회상했다. "사흘째 되던 날 벼르고 있던 직원이 '냄새 난다며 며칠째 항의 들어왔다. 나가시라'고 말했다. 순간 얼굴이 붉어지며 황급히 서점을 빠져나왔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때 다른 직원이 서점을 나오던 그를 불렀다. 이 직원은 그에게 "이 책만 읽으시더라. 다 못 읽은 것 같은데 제가 선물로 드리겠다"며 책을 건넸다.

직원이 건넨 책은 소록도를 배경으로 한 이청준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이었다. 서점에서 사흘 내내 이 책만 읽었던 그는 작가로 데뷔한 후 이 책의 영향을 받은 '이야기'라는 소설도 출간했다.

"서점 여러 번 찾아다녀… 찾을 수 있을 거라 확신"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 해당 표지는 1996년 11월 5일 발행본. 알라딘 홈페이지 캡처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 해당 표지는 1996년 11월 5일 발행본. 알라딘 홈페이지 캡처

그는 당시 서점 직원에게 감사하다는 말 대신 "나중에 제가 쓴 작품을 직접 선물로 드리겠다"고 약속했다. 소 작가는 커뮤니티에 올린 글에서 "(그 직원이) 내 약속을 믿고 있었는지 노숙인의 허언이라고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그에게 받은 친절을 매번 되새기며 버텨왔다"고 고백했다. 이어 "그 직원은 그 책을 읽던 노숙인 청년이 어느새 기성 작가로 살아가고 있음을, 약자를 대변하는 작가라는 수식을 얻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라며 궁금해했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친절을 베푼 직원을 향해 "잘 지내시냐. 당신 덕에 괜찮은 작가가 됐다. 여전히 흔들리거나 힘겨움이 찾아올 때면 그때를 떠올린다"고 말했다. "내가 과연 당신께 선물로 드릴 수 있는 작품을 집필하고 있는지 언제나 생각하고 다짐한다. 약속을 꼭 지키고 싶었다"고도 전했다.

소 작가는 실제로 이 직원을 찾기 위해 여러 차례 노력했다고 본보에 밝혔다. 그는 "배우자가 용산 소재 학교를 나와서 용산 주변도 다 돌아봤고, 서점 목록도 뽑아 보려고 했었다"고 설명했다. 자신이 읽었던 책 표지가 1993년도 발행본이어서 1993년 이전부터 운영해 온 서점도 찾아다녔지만 아직까지 그 직원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내가 스무 살 때였는데, 책을 선물해 준 직원은 20대 중후반 누나뻘로 기억한다"며 "노숙인에게 '당신들의 천국'이라는 책을 선물해 준 사람은 전국에 한 명밖에 없지 않을까. 찾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윤한슬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