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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시네마 천국’이 필요하다

입력
2024.11.16 12:0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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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제기
라제기한국일보 영화전문기자
스페인 영화 ‘클로즈 유어 아이즈’는 디지털 시대 영화에 대한 사유가 담겨 있다. 엠엔엠인터내셔널 제공

스페인 영화 ‘클로즈 유어 아이즈’는 디지털 시대 영화에 대한 사유가 담겨 있다. 엠엔엠인터내셔널 제공

지난 6일 개봉한 스페인 빅토르 에리세 감독의 ‘클로즈 유어 아이즈’(2023)는 영화에 대한 영화다. 22년 전 영화 촬영 중 갑자기 실종된 한 유명 배우의 흔적을 따라가는 내용이 169분을 채운다. 실종 배우의 영화를 찍었던 극중 감독은 옛 동료와 필름을 뒤척이며 과거를 돌아본다. 감독은 마지막 장면에서 낡은 소극장을 빌려 실종 배우를 위한 특별한 상영회를 연다. 디지털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대 황혼기를 맞은 극장에 대한 송가로 여겨지는 대목이다. 영화를 사랑하고 극장을 안식처로 여기는 시네필들은 만감이 교차할 듯하다.

요즘 만나는 영화인들은 다들 극장의 위기를 우려한다. 어느 정도 흥행을 기대한 영화들이 개봉해도 힘을 쓰지 못하고 극장가에서 물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 문화생활의 중심부를 차지했던 극장이 주변부로 밀려났다는 인식은 오래됐고, 과연 극장이 예전 같은 활력을 되찾을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다. 극장 관객 수가 최정점이었던 2019년의 60% 수준에 고착됐다는 판단에서다.

극장들은 관객을 모으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가수 임영웅의 공연 실황이 담긴 영상물 ‘임영웅: 아임 히어로 더 스타디움’ 등을 상영하거나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생중계 등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 ‘밤낚시’(13분)와 ‘4분 44초’(44분)처럼 상영시간은 짧은 대신 관람료를 최저 1,000원까지 낮춘 ‘스낵 무비’를 잇달아 선보이고 있기도 하다. 유명 가수 공연 실황과 프로야구 중계는 실익이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스낵 무비도 당장 돈이 되지 않는다. 극장들이 ‘대안 콘텐츠’를 찾는 이유는 관객 유입 효과를 노리기 위해서다.

극장을 레저 시설로 바꾸는 경우도 종종 있다. 실내 암벽등반장이나 골프연습장을 품은 극장이 하나둘 늘고 있다. 극장이 살아남기 위해 택한, 어쩔 수 없는 신사업이라고 하나 영화와는 무관하다. 과연 국내 극장이 영화에 진심인지 의문이 간다.

불황일 때 작은 영화들은 더욱 힘겹다. 극장이 힘드니 예술영화나 다큐멘터리영화 등을 소홀히 대할 수밖에 없다. ‘서울의 봄’(2023)과 ‘파묘’ 같은 대형 흥행작이 나오면 작은 영화는 극장에서 밀려나기 일쑤다. 국내 최대 멀티플렉스 체인 CGV는 코로나19 이전 CGV아트하우스라는 자체 브랜드를 통해 예술영화 상영을 선도했다. 작은 영화 시장까지 장악하려 한다는 비판이 있기도 했으나 예술영화 대중화에 기여했다는 평가가 따르기도 했다. 지금 CGV아트하우스는 ‘개점휴업’이나 마찬가지다.

시장은 바뀌었다. 변화가 필요하다. 여러 영화를 상영하며 다양한 관객을 끌어모았던 멀티플렉스는 이제 효용성을 다했다. 흥행될 성싶은 영화만 몰아주기 상영을 하는 지금, 멀티플렉스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작은 영화들을 위한 작은 극장들이 절실하다. 일본 ‘미니 시어터’(명칭대로 소극장이 대부분이다)가 좋은 사례가 될 수 있겠다. 일본 590개 미니 시어터(2022년 기준)는 독립 영화만 상영하며 영화산업의 풀뿌리 역할을 하고 있다. 대형 멀티플렉스 체인이 할 수 없는 일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영화진흥위원회는 새로운 영화 상영 공간이 생겨나고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정책을 강구할 만하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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