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300만 수익' 소상공인 덮친 수억의 빚
정부대출, 생산자 등에 갚고 나니 또 빚 뿐
"피해 봤는데" 채무자 측 고소 압박 이중고
피해자들, 영장심사 전날부터 철야농성
"그냥 어머니 아버지 다 모시고 백마강에 빠져 버릴까, 그러면 초상은 누가 치러주나, 요즘은 가만히 있다가도 눈물이 나요."
'티메프 사태' 피해자
충남 부여에서 토마토, 밤, 복숭아 등을 떼다 파는 김현숙(가명·57)씨는 평생 모은 재산을 하루아침에 잃었다. 아들처럼 싹싹하게 구는 위메프 직원만 믿고 판매 규모를 조금씩 키워온 것이 화근이었다. 1억 원어치를 팔면 300만 원 정도가 남는 장사였지만 "조금만 더 싸게, 한 번만 도와주시면 내년에는 더 챙겨 드리겠다"는 말을 믿고 남는 것 없이 팔기도 했다. 당장 이득보다 관계가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7월 15일에는 '티메프'(티몬·위메프)가 추진한 할인 이벤트에도 참여했다. 너무 이윤이 줄어들자 비용이라도 아끼려고 물건도 직접 포장했다.
그러나 직원이 그렇게 얘기한 '내년'은 없었다. 대규모 미정산 사태가 터진 뒤 티메프(티몬+위메프)는 7월 29일 기습적으로 기업회생 신청을 했다. 현숙씨가 수개월간 못 받은 판매 대금 3억3,800만 원이 증발했다. 피해금 대부분은 그동안 관계를 쌓아온 거래 농가들에게 줄 돈이었다. 정부 대출로 급한 불은 껐지만, 아직도 줄 돈이 남았다. 주변으로부터 신뢰를 잃어 다음 거래를 다시 할 수 있을지도 막막하다. 현숙씨의 어머니는 요양병원에, 아버지는 재활병원에 있다. 남은 재산은 1억3,000만 원짜리 시골 아파트가 전부. 집을 담보로 대출이라도 받으려 했지만, 이미 담보대출 5,000만 원이 잡혀있어 더 이상은 어렵다는 답이 돌아왔다.
김씨는 감쪽같은 사탕발림에 넘어갔다는 점에 더 배신감을 느낀다. 티메프 사태를 수사 중인 검찰이 구영배 큐텐그룹 대표 등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에는 구 대표 등이 올 1월 이미 정산지연 사태를 예견하고 대응방안을 논의했으며 3월에는 일부 상품의 정산지연이 발생했다고 적혔다. 그러나 현숙씨는 "그런 일이 있는 줄 전혀 몰랐다"며 훌쩍거렸다. 이어 "마지막까지 떼먹으려던 것인데 그것도 모르고 거기 앉아서 택배를 싸고 있었다"며 "스스로가 너무 원망스럽다"고 한탄했다.
정부 대책은 '연쇄 부도 방지용' 대출 뿐
이런 사정은 현숙씨뿐만이 아니다. 17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검찰이 추산한 티메프 사태 피해액은 총 1조5,950억 원으로 이 중 약 94%(1조4,987억 원)는 티메프 플랫폼을 이용한 판매자(5만7,735명)가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조금이라도 좋은 조건의 판로를 찾다가 티메프와 거래하게 된 중소상공인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월 수입의 약 60~80배 이상의 돈을 티메프에게 받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통상 플랫폼 셀러들의 마진율은 3% 안팎에 불과한데, 판매대금 미정산으로 2~3개월분 매출 금액을 돌려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월 1억 원 매출로 300만 원 수익을 올리던 판매자는 미정산 기간에 따라 2~3억 원의 피해를 보게 된 셈이다.
그런데도 정부 대책은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등을 통한 대출 지원이 전부다. 대출을 받아도 마진율 3%를 제외한 대부분 금액은 생산자나 도매상에게 고스란히 넘어간다. 거래처와 금 간 신뢰, 이자부담, 생활고는 개인이 떠안아야 한다. 정부 지원책은 티메프-셀러-도매상-생산자로 이어지는 연쇄 부도를 막기위해 내놓은 미봉책일 뿐, 근본적인 피해자 대책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신정권 검은우산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정부 대출은 시기도 너무 늦었고 심사마저 까다로워 피해액 전액을 대출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뒤늦게 인지한 피해액에 대해서는 추가 대출도 제한돼 있다"고 지적했다.
사태 여파로 파산하는 셀러도 생겨나고 있다. 티몬에서 컴퓨터 및 부품을 판매하던 중소 업체 '컴퓨리'는 정산 지연 여파로 지난달 11일 문을 닫았다. 한 피해자는 "티메프 사태 이후 경기가 급속하게 안 좋아졌고 거래처에서 선결제 조건으로만 물건을 내주는 등 경영 상황도 열악해졌다"며 "두세 달 안에 파산할 것으로 보이는 업체가 적지 않다"고 했다.
셀러들은 은행권이나 다른 업체에 갚아야 할 채무가 많아 형사 책임까지 지게 될 상황이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너무 힘들어 파산하려는 업체에 대해 채무자가 고소를 경고하고 갔다고 하더라"며 "정작 죄를 지은 구영배는 구속이 안 되는 상황에서 피해자인 우리만 구속될 판"이라고 울분을 쏟아냈다.
피해자들이 구영배 구속 원하는 이유는
피해자들은 이날 오후 4시부터 구 대표 등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이 열리는 이튿날까지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철야 시위를 이어간다. 앞서 지난 달 구 대표 등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 당한 검찰은 약 한 달 간 보강 수사를 거쳐 지난 13일 구속영장을 재청구했다.
피해자들이 구 대표의 구속을 요구하는 건 범죄 피해 보상이 결국 가해자의 재산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일본 등 해외에 알려지지 않은 구 대표 자산으로 피해를 보상 받으려면 수사와 재판이 신속히 이뤄져야 한다는 얘기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범죄 수익을 돌려놓는 가장 좋은 방법은 중형을 선고받게 해 스스로 피해자 합의에 나서게 하는 것"이라며 "구 대표에 대한 엄중한 수사는 피해자들의 회복을 위해서라도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사태 발생 이후 110건의 고소장을 접수, 수십 명의 피해자를 직접 조사한 서울중앙지검 티메프 전담수사팀(팀장 이준동 부장검사) 역시 18일 영장심사에서 주요 피해 사례를 언급하며 피의자들의 구속 필요성을 강조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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