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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지옥과 부산의 약속

입력
2024.11.19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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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지난 7월 미국 하와이 카우아이섬의 와이메아 비치의 모습. 모래사장에 반짝이는 물체가 있어 살펴봤더니 잘게 부서진 미세플라스틱이었다. 하와이=원다라 기자

지난 7월 미국 하와이 카우아이섬의 와이메아 비치의 모습. 모래사장에 반짝이는 물체가 있어 살펴봤더니 잘게 부서진 미세플라스틱이었다. 하와이=원다라 기자

타지에서 온 기자에게 친절했던 스콧 매콜빈스(54)의 표정이 싸늘해진 건 생수병을 받아든 직후였다. 미국 하와이 환경단체 서프라이더 재단 직원인 그는 지난 7월 현지 취재 온 한국일보 특별취재팀을 돕고 있었다. 매콜빈스의 임무는 한국산 플라스틱 통발에 입이 끼여 다친 몽크물범을 찾는 일이었다. 해변에서 기다림이 길어지자 그는 목말라했다. 기자가 인근 마트에서 플라스틱 병에 담긴 생수를 사와 건넸더니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매콜빈스는 단호하게 “유리나 스테인리스 병에 든 생수를 사왔어야 한다”고 말했다. 물을 병에 담아 판다니. 한국에서는 무척 생소한 일이었다. 다시 인근 마트를 찾아 진열대를 살펴보니 실제 유리병 생수가 있었다. 플라스틱 병과 비교하면 무거웠지만 하와이 사람들은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했다.

하와이 주민들처럼 바다에 의지해 사는 이들이라면 해양 쓰레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폐플라스틱 문제의 심각성을 잘 안다. 그물에 물고기보다 플라스틱이 더 많이 딸려 오고, 해변에는 잘게 부서진 채로 널려 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바다공동체 오션’이 최근 낸 '해양 플라스틱 오염과 국제 플라스틱 협약' 보고서에 따르면 플라스틱은 1950년대 생산량이 150만 톤 수준이었지만 2019년에는 4억6,000만 톤으로 300배 넘게 늘었다. 2060년에는 12억3,000만 톤이 생산될 전망이다.

분리수거만 잘하면 문제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겠다. 하지만 플라스틱 재활용률은 9%에 불과하다. 플라스틱의 세부 재질이 워낙 다양해 분류하기 어려운 데다 이물질이 묻어 재활용이 곤란한 쓰레기도 많다. 플라스틱 폐기물의 91%는 매립∙소각되거나 바다 등으로 흘러 들어간다. 해양에는 미세플라스틱(5㎜ 이하의 플라스틱) 형태로 쌓이고, 이는 바다 생물의 몸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 물고기를 우리가 먹는다.

기후변화에 견줄 만한 플라스틱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덜 쓰는 것뿐이다. 이는 특정 소비자나 기업, 정부의 선의에 기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플라스틱 생산과 소비는 전 세계적으로 얽혀 이뤄지고, 바다에 버려진 플라스틱은 국경 없이 표류하기에 범국가적인 해결 노력이 필요하다.

오는 25일부터 일주일간 부산에서 열리는 유엔 플라스틱 협약 제5차 정부간협상위원회 회의(INC-5)는 그런 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플라스틱 문제를 이대로 뒀다간 공멸한다'는 위기의식 속에 2022년 11월 우루과이에서 첫 회의를 한 INC는 지난 2년간 네 차례 회의를 열었고, 부산에서 마지막 회의만 남겨두고 있다. 부산 회의에는 170여 개국 정부 대표단이 참여해 법적 구속력이 있는 최초의 플라스틱 국제협약문을 도출하는 걸 목표로 삼는다.

국가 간 이견이 가장 큰 부분은 플라스틱 생산 감축이다. 플라스틱 산업이 캐시카우(자금원)인 산유국 등은 플라스틱 원료 생산을 줄이는 안에 반대하며 재사용을 확대해 대응하자는 의견을 굽히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궁극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의견 대립 속에 우리나라 입장에도 관심이 쏠린다. 세계 4위의 석유화학산업 생산국이라는 입지를 의식한 우리 정부는 지금껏 모호한 입장만 드러내 왔다. 하지만 역사에 기록될 플라스틱 회의에서 확실한 입장을 밝히는 것이 주최국으로서 할 최소한의 역할이다.

유대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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