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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풍 떤 트럼프보다, 훈계질과 잘난 척하는 해리스가 더 미웠다

입력
2024.11.19 04:30
수정
2024.11.21 10:31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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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2.0' 시대를 전망한다-②미국, 왜 트럼프인가?

편집자주

국내외 주요 이슈들을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깊이 있는(deep) 지식과 폭넓은(wide) 시각으로 분석하는 심층리포트입니다.

2024년 미국 대선의 핵심 경합지로 알려졌던 펜실베이니아 지역의 한 투표장에서 5일 한 백인 유권자가 칸막이가 설치된 기표소에서 자신의 한 표를 행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4년 미국 대선의 핵심 경합지로 알려졌던 펜실베이니아 지역의 한 투표장에서 5일 한 백인 유권자가 칸막이가 설치된 기표소에서 자신의 한 표를 행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대선이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승리로 끝났다. 지난 1년 동안 공화·민주당의 선거운동을 복기하고, 미국 유권자들이 트럼프를 선택한 이유를 선거일 즈음의 출구 조사와 득표 상황을 통해 객관적으로 분석할 때다.


트럼프 승리, 압승 같아 보이는 신승

538명의 선거인단 중 312명(58%)을 가져간 선거 결과부터 보자. 선거 직전의 분위기는 초박빙이었다. 10월 말 뉴욕타임스 마지막 여론조사에서는 48% 대 48% 동률이 나왔다. 7개 경합주에서도 모두 오차범위 이내 접전이 예상됐다. 그러나 개표가 며칠 걸릴 수 있다는 전망을 깨고 다음 날 아침 너무 빨리 승리가 확정됐다. 한국 언론은 일제히 "트럼프 압승"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과연 압승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선 전국 득표율 차이가 2%포인트(트럼프 50.2%, 카멀라 해리스 48.2%)에 불과하다. '압승' 평가는 7개 경합주 모두에서 트럼프가 이기면서 선거인단을 휩쓸었기 때문에 생긴 '착시현상'이다. 승부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모두가 지목했던 중서부 러스트벨트의 경우 △펜실베이니아 1.9%포인트 △미시간 1.4%포인트 △위스콘신 0.9%포인트 차이였다. 해리스 입장에서는 중서부 3곳에서 조금만 더 선전했어도 결과를 뒤집을 수 있었다. 트럼프의 신승(辛勝)이라고 요약하는 것이 더 적절하겠다.


선거전술에서 승리한 트럼프

트럼프가 아슬하게 승리할 것이라는 예상은 연초부터 있었다. 경제, 특히 높은 인플레이션 때문이었다. 경제가 어려울 경우 그 책임을 현직 대통령 정당에 묻는 것인데, 정치학 교과서에서는 이를 '회고적 투표'(retrospective voting)라고 부른다. 1992년 아버지 부시 대통령의 재선 실패, 2008년 공화당의 패배, 2020년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실패가 모두 그렇다. 사실 지난해와 올해 인플레이션은 미국만이 아닌, 세계적 문제였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거의 모든 선거에서 각국의 여당이 패배했다.

CNN 출구조사에 따르면, 미국 경제가 (매우 또는 그럭저럭) 좋다고 대답한 사람들은 전체 유권자의 32% 정도밖에 안 됐다. 33%는 경제가 매우 나쁘다고 대답했는데, 이들의 87%가 트럼프를 찍었다. 경제가 그럭저럭 안 좋다고 답한 유권자들도(35%) 트럼프를 더 많이(54%) 지지했다.

반면, 민주당이 내놓은 여성의 임신중지권 이슈는 영향력이 약했다. 2022년 연방대법원이 여성의 임신중지는 더 이상 연방헌법에 보장된 권리가 아니라는 보수적 판결을 했고, 이것은 그해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의 선전을 이끌었다. 올해도 비슷하리라 예상됐지만, 트럼프가 유연하게 대응하면서 파괴력이 희석됐다. 임신중지권 보장 또는 낙태 금지는 개별 주 정부가 상황에 맞춰 알아서 결정할 문제라고 한 것이다.

2020년과 2024년 CNN 출구조사를 비교해 보면, 임신중지권 보장을 찬성하지만 주 정부가 할 일이라고 생각한 유권자들의 트럼프 지지율이 30%에서 47%로 증가했다. '낙태를 금지해야 하지만 주 정부의 권한'이라고 본 사람들도 트럼프 지지가 19%포인트 늘었다. 트럼프가 불리한 이슈를 상당히 잘 컨트롤한 셈이다.


높은 선거율도 트럼프에게 호재

선거에 대한 지대한 관심과 높은 투표율도 트럼프에게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았다. 한국도 비슷하지만 미국에서 투표율이 높은 경우 대개는 민주당에 유리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공화당이 사전투표를 장려하는 전략을 썼고, 일론 머스크가 약 2,400억 원의 사비를 보수 유권자들의 투표 독려활동에 사용했다.

그래픽=송정근기자

그래픽=송정근기자

경합주 7곳 중 6곳에서 역대 최고 투표율을 경신했지만, 트럼프 득표율이 모두 높아졌다. 사전투표율 상위 10개 주 중 8곳에서 트럼프가 승리했고, 전국 사전득표율보다 높았던 19개 주 중 11곳에서 트럼프가 이겼다. 자신을 지지하는 소위 '집토끼'를 잘 결집해 투표장에 나가도록 하는 선거운동 미션에서 공화당이 대성공한 것이다.

유권자 그룹을 좀 더 세분해서 분석해 보면 트럼프 진영의 '집토끼'와 '산토끼' 지지 패턴의 특징과 변화도 관찰할 수 있다. 역시 이번에도 가장 중요한 집단은 저학력층 유권자들이었다. 2016년 트럼프 당선을 이끈 배경이라는 이야기는 이미 잘 알려져 있지만, 올해 그 경향이 더 확고해졌다. 2020년 대졸 미만의 학력을 가진 미국인들의 50%가 트럼프를 지지했는데, 올해는 54%로 4%포인트가 늘었다. 이런 변화는 백인 저학력층의 지지 열기 상승이 아니라, 오히려 흑인이나 히스패닉 등 유색인종 저학력층의 지지가 26%에서 34%로 8%포인트나 증가했기 때문이다.

학력과 연관된 소득수준도 중요한 변화가 있다. 연소득 5만 달러 미만 저소득층의 지지는 2020년 44%에서 2024년 49%로 5%포인트 증가했다. 연소득 5만~10만 달러의 중위소득층에서도 트럼프 지지율이 7%포인트 늘었다. 반면, 연소득 10만 달러 이상 고소득층은 트럼프 지지가 2020년 54%에서 올해 45%로 9%포인트 감소했다. 역사적으로 민주당은 경제적 빈곤층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며 이들의 지지를 더 많이 받아왔지만 이번 선거에서 그 구도가 변했다. 이제 민주당은 고소득층의 정당, 공화당은 저소득층의 정당이 됐다.

히스패닉 인구의 변화는 단기적, 장기적으로 모두 중요한 의미가 있다. 2020년 32%의 히스패닉이 트럼프를 지지했는데, 이것도 2016년과 비교해서 4%포인트 증가한 것이어서 주목을 받았었다. 그런데 올해는 그 비율이 45%가 되면서 무려 13%포인트 늘었다. 특히, 히스패닉 남성은 18%포인트, 30세 미만 히스패닉 청년층은 19%포인트 트럼프 지지율이 증가했다.

가톨릭 신자가 다수이면서 사회·문화적으로 보수적 성향이 짙은 히스패닉은 과거 소수 인종이라는 이유로 민주당을 지지했지만, 최근 10년 정도 사이에 자신들의 이념적 성향과 부합하는 정당으로 말을 갈아탔다는 분석이 다수다. 미국 시민권을 획득한 히스패닉은 더 많은 히스패닉이 이민 와서 자신들의 경제적 기반을 위협하는 것을 경계하기 때문에 불법 이민자에게 단호한 공화당을 지지하게 됐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그 원인과 무관하게 히스패닉 인구가 급속도로 증가하는 추세이기 때문에, 이들의 정당 지지패턴은 향후 민주, 공화 양당의 정책 지향과 선거전략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그 이외에도 트럼프 후보에 대한 지지율이 증가한 그룹이 있다. 2020년과 비교해 30세 미만의 젊은 유권자들이 6%포인트, 아시아계 인구도 4%포인트 늘었다. 농촌지역 인구는 원래도 트럼프 지지세가 컸지만, 올해 6%포인트 더 늘어서 63%의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다.

다만, 언론에서 많이 언급됐던 여성의 해리스 지지율 증가는 없었다. 올해 여성의 트럼프 지지율(44%)은 남성보다 10%포인트 낮았는데, 2020년의 11%포인트 차이와 유사하다. 또, 30대 미만 젊은 층에서 보이는 성별 트럼프 지지율 차이도 11%포인트였는데, 다른 세대의 성별 차이와 비슷한 수준이다.


유권자에 대한 훈계질로 무너진 민주당

요약하면, 삶이 빡빡해진 평범한 미국인들이 민주당 정권을 심판했다. 특히, 상대적으로 더 어려워진 저학력, 저소득층 계층과 저숙련 노동을 하는 히스패닉 및 사회 초년생들이 더 크게 화를 냈다. 그런데도 정작 민주당은 책상머리에 앉아 입바른 소리를 하거나, 교사가 학생에게 훈계하는 투의 메시지를 유권자들에게 내보냈다. 민주당의 대오각성이 필요한 지점이다.

물론 공화당도 마냥 희희낙락할 때는 아니다. 백악관과 더불어 연방 상하원 모두를 장악하고 연방대법원까지 같은 편으로 두었으니, 거리낌 없이 자신들이 원하는 일들을 추진할 것이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듯, 보통의 미국인들이 원하는 딱 그만큼까지만 해야 한다. "오버"하면 자기 발에 자기가 걸려 넘어질 수 있다.


박홍민 미국 위스콘신주립대 정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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