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노퓨달리즘' 저자 야니스 바루파키스
"아마존닷컴에 접속하는 순간 자본주의와는 작별하는 겁니다. 거기서 수많은 구매와 판매가 이뤄지지만, 여러분이 접속해 있는 그곳은 시장이라고 할 수 없는 영역이에요. 디지털이냐 아니냐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리스 재무장관을 지낸 좌파 경제학자 야니스 바루파키스(63)는 최근 펴낸 책 '테크노퓨달리즘'에서 자본주의의 종말을 고한다. 예컨대 아마존닷컴은 자유롭고 개방적인 경쟁에 기반한 자본주의 시장이 더는 아니라면서. "고객이 상품을 둘러보고, 원하는 상품을 파는 판매자에 접근해 협상하는 대신 아마존닷컴에서는 (아마존 창업자 겸 이사회 의장인) 제프 베이조스의 알고리즘에 의해 모든 게 결정됩니다." 최근 한국일보와 서면으로 만난 바루파키스는 이렇게 말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첨단 기술(테크노)로 이뤄진 봉건주의(feudalism·퓨달리즘) 체제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베이조스는 아마존닷컴에서 이용자의 온갖 정보에 근거한 알고리즘을 통해 어떤 상품을 보여주고, 보여주지 않을지 결정합니다. 그리고 상품이 판매될 때마다 수수료를 받죠." 베이조스 같은 빅테크의 '조만장자'들은 클라우드(가상서버)와 알고리즘을 앞세운 새로운 지배 계급 즉 '신흥 봉건 영주'이고, 아마존닷컴은 그들의 '디지털 영지'라는 게 바루파키스의 설명. 바루파키스는 "베이조스는 자본가이지만 과거의 봉건 영주와 같은 방식으로 징수한 지대(클라우드 수수료)로 부를 축적한다"며 "클라우드 지대가 '이윤'을 대체하고 아마존닷컴이 '시장'을 대신하는 이 새로운 시스템은 '테크노퓨달리즘'으로 가장 잘 설명된다"고 강조했다.
SNS 통해 '클라우드 영주 클럽' 가입한 머스크
테크노퓨달리즘의 속성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이는 전기차 업체 테슬라 수장인 일론 머스크다. 바루파키스는 "머스크는 혁신과 시장 개척을 통해 전통적인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대기업을 일군 성공적인 자본가였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X·옛 트위터)를 인수한 순간 클라우드 영주 클럽에 가입했다"고 말했다. 테크노퓨달리즘 울타리 안에서 노동자인 우리는 '클라우드 농노'이자 무임금 노동하는 '데이터 노예'로 전락한 존재다. SNS에 자발적으로 개인정보와 콘텐츠를 업로드하는 공짜 노동을 하면서 클라우드 기업의 자본을 대신 생산하고 있다. 바루파키스는 "나 역시 클라우드 자본의 열렬한 사용자이자 생산성 높은 클라우드 농노"라고 고백한다.
그러면서 바루파키스는 "우리 자신을 해방시키기 위해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했다. 테크노퓨달리즘이 자본주의보다 한 단계 '진화'한 지점이자 "민주적 정치와 집단행동이 중요한 이유"다. "기술적으로 진보한 도구의 궁극적 가치는 누가 그것을 소유하고, 어떤 용도로 사용하는지, 그래서 결국 누가 이익을 얻고 누가 손해를 보는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의 이런 견해에 대해선 흥미롭지만 동의하기 어렵다는 반응도 꽤 나온다. 그럼에도 책은 "클라우드 자본이 계속 극소수에게만 소유된다면 인류의 파멸을 초래할 것이라는 경고"라는 점에서 일독할 가치가 충분하다. 바루파키스는 이렇게 책을 끝맺는다. "만국의 클라우드 농노, 클라우드 프롤레타리아, 그리고 클라우드 가신들이여, 눈을 떠라. 우리는 우리의 정신에 채워진 족쇄 외에는 잃을 게 없노라!"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