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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면 좋은 일 생긴다"…전란 속 민초의 질긴 생명력 보여주는 연극 '퉁소소리'

입력
2024.11.20 17:00
수정
2024.11.20 17:07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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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극단 연극 '퉁소소리'
30년간 이산가족사 담은 조위한 소설 '최척전' 원작

편집자주

공연 칼럼니스트인 박병성이 한국일보 객원기자로 뮤지컬 등 공연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격주로 연재합니다.

연극 '퉁소소리'. 세종문화회관 제공

연극 '퉁소소리'. 세종문화회관 제공

연극은 허구 속에서 진실을 발견하는 예술이다. 한 배우가 어린 아이와 노인을 동시에 연기해도, 뿔 하나만 들고 나와 코뿔소라고 우겨도 통용된다. 연극은 배우의 연기와 무대, 조명, 음향 등 무대 효과에 관객의 상상력이 더해져 완성된다. 연출가 고선웅은 이러한 연극의 특성을 잘 활용하는 연출가이다. 대표작 '조씨고아'나 '회란기', '홍도' 등은 고전 소설에 연극적 숨결을 불어넣어 무대 위 예술로 완성한 작품들이다. 그의 무대는 대체로 비어 있고 간소하지만 부채 하나, 빗자루 하나만으로도 다채로운 이야기를 펼쳐낸다. 여백은 관객의 상상력으로 채워 마법처럼 이야기를 완성한다.

연출가 고선웅의 연극성을 극대화한 대표작 목록에 추가할 작품이 등장했다. 바로 조위한의 고전 소설 '최척전'을 극화한 서울시극단 신작 '퉁소소리'(고선웅 작·연출)다. 원작 '최척전'은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초까지 정유재란을 비롯한 국가적 환란 속에서 전쟁에 참여하면서 이별하게 되는 최척과 옥영의 이야기를 다룬다. 조선에서 시작해 일본, 중국, 베트남에 걸쳐 이야기가 전개된다. 30년에 가까운 시간대에 동아시아를 두루 아우르는 지역을 배경으로 삼고 있음에도 분량이 길지 않다. 그만큼 압축된 서사로 이어지는 소설이다. 재현을 근간으로 하는 무대에서 펼쳐 보이기에 난해할 수밖에 없다.

연극 '퉁소소리'는 원작의 방대한 서사를 빠짐없이 다룬다. 극을 압축해 서사를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 원작 작가인 조위한(이호재 분)을 사회자로 내세운다. 사회자 조위한은 생략과 비약으로 극의 핵심 내용만 빠르게 풀어내는데도 자연스럽다. 배우들 역시 압축과 비약의 연속인 서사에서 능청맞게 몰입과 이완을 넘나드는 연기로 집중력을 더한다. 이러한 고선웅의 연출 방식은 전통 연극을 차용한 것인데 근대 서구 연극의 영향이 깊이 뿌리내린 지금, 오히려 더 현대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연극 '퉁소소리'. 세종문화회관 제공

연극 '퉁소소리'. 세종문화회관 제공


원작의 과도한 우연성, 해학으로 희석

연극 '퉁소소리'. 세종문화회관 제공

연극 '퉁소소리'. 세종문화회관 제공

해학과 유머는 '퉁소소리'의 큰 강점이다. 전란 속에서 환란을 겪는 것이 주된 이야기이지만 해학이 짙은 연출로 작품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유머는 작품의 난점을 해결하기도 한다. 원작 자체에 우연성에 기댄 설정이 많아 현대적 관점에서는 긴장감을 놓기 쉬운 이야기다. 전쟁으로 헤어진 가족이 하나둘 운명처럼 만나는 과정에서 무수한 우연이 연이어 발생한다. 정유재란으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진 후 최척의 아버지 최숙 일행이 숨어든 절에서 스님이 목숨을 구한 어린 손자 몽석을 만나고, 명청 전쟁에 참여한 최적과 성장한 아들 몽석이 각자 후금의 포로가 돼 상봉하기도 한다. 또한 조선에 생존해 있는 아버지 최숙에게 향하는 귀향 길에 최척이 욕창으로 지독한 고통을 겪자 여관에 묵고 있던 중국 사람이 치료해 준다. 이 사람이 최척이 중국에서 낳은 두 번째 아들 몽선의 실종된 장인 진위경인 식이다.

이처럼 우연이 가득하지만 연극에서는 이러한 장면마다 코믹한 연출로 우연성에서 오는 허탈함을 희석시킨다. 최척과 아들 몽석이 만나는 장면에서는 포로들이 굴비 엮듯 긴 포승줄로 머리를 엮어 최적과 아들의 우연하고도 안타까운 만남을 웃음으로 승화한다. 최척과 사돈 진위경이 만나는 장면에서는 진위경의 침술로 욕창을 치료하는 장면을 마치 거문고를 뜯는 듯한 동작으로 표현해 웃음을 자아낸다.

조선 후기 작품이지만 여성 캐릭터의 진취성은 현대물 못지않다. 최척의 아내 옥영은 서당에 있는 최척의 됨됨이를 살펴 먼저 마음을 전하고 가족과 헤어져 일본과 베트남, 중국을 떠도는 여정을 감내해낸다. 몽선 내외와 함께 중국에 남겨진 옥영은 가장으로서 가족을 이끌고 험난한 뱃길을 헤쳐 고향으로 돌아온다. 둘째 아들 몽선의 처 홍도 역시 조선으로 떠난 아버지와 만나겠다는 의지를 지켜내며 이루는 인물이다. 위험천만한 뱃길 여행 앞에 망설이는 남편 몽선을 설득하고 긴 여행을 이겨내 마침내 아버지 진위경과 만난다.

연극 '퉁소소리'는 온갖 환란을 거쳐 가족이 모이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그 과정에 우연이 깊이 관여하지만 그러한 우연을 가능케 한 것은 고단한 삶을 포기하지 않고 맞서 견뎌내온 민초들의 질긴 생명력이었다. '퉁소소리'는 살아가는 것의 행복,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면 언젠가 행복한 날이 찾아온다는 긍정적 메시지를 전한다. 이달 27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한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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