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용 KCC정보통신 회장 인터뷰]
부친이 기증한 체육관 재건축 '나눔 대물림'
서울대 문화관 건립 등 사재 600억 원 쾌척
한국인 1호 IBM 입사, 국내 최초 컴퓨터 도입
"소프트웨어 산업 발전 위해 기부 결심"
"부는 자식에게 물려주는 게 아니라 더 좋은 사회를 위해 환원해야 합니다."
지난달 7일 울산 남구 신정동 종하이노베이션센터 준공식에 참석한 이주용(89) KCC정보통신 회장은 "번 돈을 사회에 돌려주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문화·창업·교육 복합공간인 종하이노베이션센터는 이 회장이 330억 원을 기부해 지하 1층∼지상 6층, 연면적 1만9,905㎡ 규모로 건립됐다. 앞서 그의 부친인 고 이종하 선생은 1977년 같은 자리에 토지 1만2,740㎡(3,854평)와 당시 돈 1억3,000만 원을 들여 종하체육관을 지어 기증했고, 전쟁고아들을 위한 학교 설립과 장학금 지원에도 앞장섰다.
대를 이어 나눔을 실천한 이 회장은 같은 달 15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아버지는 늘 '돈은 버는 것보다 쓰는 게 어렵다'고 하셨다"면서 "그 가르침에 따라 평생을 아끼며 살아 왔지만 의미 있는 곳에는 과감하게 쓰고 싶었다"고 했다. 이 회장의 건강상 문제로 인터뷰는 서면과 장남 이상현 KCC정보통신 부회장과의 전화 통화로 진행했다.
이 회장은 1935년 울산에서 태어나 경기고, 미국 미시간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60년 미국 IBM사에 한국인 최초 프로그래머로 입사한 뒤 1967년 우리나라에 처음 컴퓨터를 들여와 같은 해 국내 1호 소프트웨어 기업인 한국전자계산소(현 KCC정보통신의 전신)를 설립했다. 이후 한국은행 금융업무 전산화를 비롯해 김포공항 출입국 관리와 철도 승차권 온라인 전산화, 주민등록번호 보안체계 개발 등을 이뤄 냈다.
굵직한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자연스레 부도 축적했지만 이 회장은 한 푼도 허투루 쓰는 법이 없었다. 새 차도 일흔이 넘어 처음 탔다. 오죽하면 별명도 '고물'이었을까. 이 회장은 "어려운 형편이 아니었는데도 학창시절부터 교복, 신발, 가방 등 단 한 번도 새것을 써본 적이 없다"며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사주신 중고 점퍼는 얼마나 컸는지 대학 가서도 입고, 미국에서도 쭉 입다 귀국할 때 다시 가지고 왔다"고 회상했다. 이 회장의 유별난 절약정신은 그가 단 한 번도 부친의 도움이나 은행 빚을 지지 않고 건실하게 회사를 운영하는 밑거름이 됐다.
본인에게는 인색했지만 남에게는 후했다. 이 회장은 KCC정보통신 창업 50주년이던 2017년 자신이 가진 금융자산의 절반인 '600억 원 기부'를 공언했다. 가족들도 흔쾌히 이 회장의 뜻을 따랐다. 이상현 부회장은 "어느 날 '먹고살 만하냐' 물으시길래 '그럭저럭 괜찮다' 답했더니 '가진 재산의 절반은 기부를 좀 해야겠다'고 하시더라"며 "고등학교 졸업 후 줄곧 각자도생했고, 재산을 물려받아야겠다는 생각도 없었기에 '아버지 돈이니 마음대로 쓰시라' 했다"고 웃으며 뒷이야기를 전했다. 그길로 이 회장은 종하이노베이션센터에 330억 원, 서울대 문화관 재건축에 100억 원, 운당나눔재단‧미래와소프트웨어재단‧종하장학회 등 인재 양성에 227억 원 등 지금까지 600억 원이 넘는 돈을 기부했다.
특히 그가 꾸준히 관심을 두고 지원하는 분야는 소프트웨어산업이다. 최근 출간한 이 회장의 회고록 '반세기 컴퓨터와 함께한 인생'에는 "우리나라 소프트웨어산업 발전에 뭔가 보탬이 되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굳어지면서 비로소 '돈 쓰는 일'이 시작됐다"고 적혀 있다. 종하이노베이션센터 건립에 큰돈을 내놓은 것도 소프트웨어교육시설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이 회장은 "우리나라 정보기술(IT)은 주로 반도체나 휴대폰 같은 하드웨어 위주로 발전한 반면 소프트웨어는 뒤처져 있다"며 "천재 한 명이 10만 명의 범재를 먹여 살린다는 말이 가장 잘 들어맞는 분야가 바로 소프트웨어"라고 강조했다.
구순을 앞두고 건강이 나빠진 이 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상태에서도 여전히 할 일을 고민하고 있다. "생명이 지속되는 한 마침표가 찍히지 않는 게 사람 인생이에요. 언제 어느 자리에서든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이라는 게 생기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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