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은 일을 조용하게 펼치는 사람들
우리 사회 지탱하는 '힘'이자 '버팀목'
평범하고 착한 사람이 세상의 주역
김민기의 노래는 다 좋다. 특히 좋아하는 노래는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곡이다. "그 맑은 두 눈에 빗물 고이면 음…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그는 모두가 좋아하는 '큰형' 또는 '어른'이었다. 어떠한 정치색을 드러내지 않은 채, 묵묵히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가 떠나던 날, 비가 세차게 내렸고, 미국에서 날아온 지인과 소주잔을 밤늦게까지 기울였다.
주말에 오랜 인연들과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오름에 올라가 낙조를 보고, 단풍과 낙엽이 어우러진 삼나무숲을 거닐며 1980년대 대학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지금의 정치 지형으로 보면 절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전직 검사, 전직 운동권 사람들이 함께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어느덧 방향은 하나로 이어졌다.
김영갑은 1957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났다. 1985년 제주에 정착한 후 '섬의 외로움과 평화'를 사진에 담는 작업에 열중하다 2005년 5월 사망했다. 생을 마감하기까지 루게릭병으로 6년간 투병하는 동안에도 제주의 수많은 풍경을 남겼고, 유골은 폐교된 '삼달 초등학교' 앞마당 감나무 아래 뿌려졌다. 그 터에 자리 잡은 게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이다.
전직 검사였던 후배는 오름의 고요한 모습을 이렇게 에너제틱하게 담아내는 모습이 신기하다고 했다. 그는 '업의 완성은 테크닉이 아니라 인품에 달려있다는 생각 때문에, 업에 맹렬히 천착하는 사람을 보면 인격적 성취를 이룬 과정이 궁금해진다. 김영갑 작가의 사진 자체보다 중병의 와중에 맹렬한 추구의 열의가 깊이 느껴졌던 공간이다'라고 말했다.
작년에 '어른 김장하'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주마간산 격으로 본 적이 있다. 그는 진주의 작은 한약방 주인인데, 갑자기 화제의 주인공이 되었길래 관심을 가져본 정도였다. 제주에서 돌아오는 길에 기내에서 잠도 오지 않을 한 시간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어른 김장하'를 다시 보았다. 다시 봐도 별난 어른이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이 만나자 해도 만나지 않고, 밥 먹자 해도 밥을 먹지 않았다. 자신이 몸담았던 사립학교 운영과 관련하여 타협하거나 협박에 굴복하는 일도 없었다. 100억 원이 넘는 재산으로 설립한 학교를 국가에 기부채납하고 평범한 할아버지로 돌아갔다. 평생을 남을 돕는 일로 일관되게 살아왔다. 롯데와 최동원의 열렬한 팬이었다가 NC 팬으로 갈아탄 정도가 그의 삶에 있었던 작은 변화였다. 그가 우리 시대의 '어른'이란 걸 부정하는 사람이 있을까?
지금 우리 사회는 정치, 경제적으로 수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오로지 '대결'로만 치달을 뿐 타협할 여지는 보이지 않는다. 이런 시기에 '지혜를 전해주는 어른'의 존재가 간절하다. 내가 생각하는 어른은 정치적으로 어떤 생각과 사상을 가졌는지 관계없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옳은 방법으로 실천한 사람들이다. '김장하', '김영갑', '김민기' 같은 분들 말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이런 '어른'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에 이런 '어른'은 도처에 존재할 것이라고 믿는다. 다만 안 보일 뿐이다. 그분들이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고 '버팀목'이다. 양극단의 정치세력과 이를 추종하는 수많은 사람은 우리 사회의 주류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어른'이 우리 사회의 주류 아닌가. 똑똑하고 현명하며, 민주적이고 당당한 젊은이도 '어른'과 같은 대접을 받아야 한다. 나이를 먹었다고 다 '어른'은 아니다. '어른 김장하'는 자신의 장학금을 받은 친구가 훌륭한 사람이 못 되어 죄송하다고 하자 '훌륭한 사람이 세상을 이끌어 가는 게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 세상을 유지한다'고 말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