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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이 겨울을 준비하는 방식

입력
2024.11.20 04: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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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편집자주

사람에게 따뜻함을 주는 반려동물부터 지구의 생물공동체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구체적 지식과 정보를 소개한다.

은행나무 단풍(왼쪽)과 단풍이 들어 낙엽 중인 느티나무 ⓒ서효원

은행나무 단풍(왼쪽)과 단풍이 들어 낙엽 중인 느티나무 ⓒ서효원

길어진 여름과 짧아진 가을이었지만 올가을 단풍도 예년에 못지않게 잘 들었다. 겨울이 일찍 닥칠 것이라 걱정했지만, 한동안 영상의 기온으로 버텨준 가을 날씨가 나무들에게 단풍이 잘 물들 수 있는 시간을 벌어 주었기 때문이다.

단풍이 드는 것은 나무들이 겨울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가을이 되어 일교차가 커지고 추워지면 광합성이 멈추고, 빛을 흡수하는 엽록소(클로로필)도 필요가 없게 된다. 이즈음 식물은 소용이 없어진 엽록소를 분해하기 시작하는데 초록색에 가려져 있던 카로티노이드(노란색)와 안토시아닌(붉은색) 같은 색소들이 색을 드러내는 것이 단풍 현상이다.

온대 지방에서 자라는 나무 대부분은 겨울철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기 위한 휴면에 들기 전 낙엽을 진행한다. 낙엽이 시작되기 직전, 식물은 나뭇잎에 남아 있는 유용 성분들을 줄기나 뿌리로 이동시킨다. 다음 해 봄 새싹을 틔워 생장하는 데 필요한 성분들을 재활용하기 위한 전략이다. 식물이 낙엽 전 엽록체를 분해하는 이유도 엽록체 구성에 필수 원소인 마그네슘을 주변 가지로 이동하기 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단풍이 잘 든 나무는 이듬해 봄, 새싹을 내기 위한 준비도 잘 진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주말 한나절 둘러본 공원과 거리에서는 은행나무와 느티나무, 벚나무와 상수리나무가 곱게 단풍이 들어 낙엽이 지고 있었다. 혹독한 폭염을 겪고도 매력적인 단풍 빛깔을 내는 나무들의 자태가 경이롭기까지 하다.

민들레와 냉이, 꽃다지처럼 봄에 꽃이 피는 많은 풀들은 가을에 난 잎이 얼어 죽지 않도록 잎을 땅에 붙인 로제트(rosette)로 겨울을 난다. ⓒ서효원

민들레와 냉이, 꽃다지처럼 봄에 꽃이 피는 많은 풀들은 가을에 난 잎이 얼어 죽지 않도록 잎을 땅에 붙인 로제트(rosette)로 겨울을 난다. ⓒ서효원

겨울 준비를 마친 풀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냉이와 꽃다지, 민들레와 할미꽃처럼 이른 봄 양지바른 곳에서 꽃이 일찍 피는 풀꽃 식물들은 대부분 가을이 오기 전 땅에 떨어진 씨앗이 싹을 틔워 뿌리를 내리고 잎을 키운다. 겨울이 임박해 추워지기 시작하면 그동안 뿌리에 붙어 자라던 잎들은 땅을 움켜쥔 듯한 모습의 로제트(rosette, 봄에 꽃이 피는 풀 종류의 겨울 잎 혹은 그 모양)를 형성한다. 지온(地溫)을 이용해 추운 겨울 얼어 죽는 것을 피하기 위한 나름의 전략이다. 겨울을 나기 위해 겨울잠을 자거나 따뜻한 곳으로 이동하는 동물보다 식물이 환경에 더 적극적으로 적응해 진화한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사람이나 동물보다 극단의 기후변화에도 식물이 더 오래 생존하게 될지도 모른다.

꽃피는 시기가 올해처럼 늦어지면 사람들은 걱정하겠지만 이번 가을 단풍이 잘 든 벚나무는 내년 봄 더 화사하게 꽃이 필 것이다. 변화에 잘 적응한 식물에게 자연이 준 선물인 셈이다.


서효원 식물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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