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교수, 대자보 작성 학생들 고소 맞서
'명예훼손 무죄 결정을 위한 연대 집회' 개최
"대학 안전 지키려는 학생들은 죄가 없다. 고소당한 대자보엔 틀린 말 하나 없다!"
18일 서울 노원구 노원경찰서 앞. 과잠(학과 점퍼)을 입은 서울여대 학생들이 손팻말을 든 채 큰 소리로 구호를 외쳤다. 이 학교 래디컬 페미니즘(급진적 여성주의) 동아리 '무소의뿔'이 개최한 '명예훼손 무죄 결정을 위한 연대 집회'였다. 500여 명의 재학생과 졸업생, 교수 등은 성범죄를 저지른 독어독문학과 A교수에 대한 비판 대자보를 붙인 학생들이 고소된 사건에 대해 경찰의 불송치 결정을 촉구했다.
서울여대 학생들이 경찰서 앞에 모인 건 A교수가 학생들을 성희롱·성추행한 사건 때문이다. 지난해 7월 신고를 받은 학교는 진상조사를 실시해 해당 교수에게 감봉 3개월의 징계 처분을 내렸다. 1년 2개월이 지난 올해 9월에서야 뒤늦게 사실을 알게 된 학생들은 학교 처분에 항의하며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고 피해자 보호를 강화해야 한다"는 내용의 대자보를 부착했다. 대자보엔 이니셜화한 A교수의 이름이 담겼다. 이에 A교수는 지난달 22일 대자보를 작성한 학생들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집회 참석자들은 A교수의 고소 결정에 반발했다. 대자보 작성자 중 한 명인 B씨는 "학교는 재학생과 졸업생 얼굴에 먹칠하지 말고 성추행을 저지른 사람의 교수직을 박탈해야 한다"고 외쳤다. 생명환경공학과 재학생인 윤영원씨도 "대자보는 성범죄 은폐를 막고 학생 공동체의 알 권리를 충족하기 위한 것"이라며 "교수가 학생들을 고소한 건 피해자 보호와 공동체 안전을 저해하는 부당한 행위"라고 말했다.
서울여대 교수들도 목소리를 높였다. 신현숙 독어독문학과 교수는 "저는 학생 편이라서가 아니라 여러분이 옳기 때문에 모든 일을 함께할 것"이라며 "너무 미안하고 부끄럽고 감사하다"고 눈물을 흘렸다. 서울여대 제18회 교수평의회도 전날 "승현우 서울여대 총장은 대책 마련과 재발 방지를 위한 구체적 계획을 밝히고, A교수는 학생들에 대한 고소를 취하하라"는 입장문을 냈다.
다른 여대 학생들도 힘을 보탰다. 이화여대 래디컬 페미니즘 동아리 '래디' 관계자는 "학교에서 위계형 성범죄가 끊임없이 발생하는 건 학교가 학내 성폭력을 해결할 의지가 없기 때문이며, 여성을 진정한 학생으로 대우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남녀 공학 전환 문제로 학교 측과 갈등하고 있는 동덕여대 학생들도 동참했다. 이 학교 래디컬 페미니즘 동아리 '사이렌' 관계자는 "A교수는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는 제자와 존중해야 하는 인격체로 보지 않고 그저 성범죄를 저질러도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어린 여자 정도로만 보고 있다"고 비판했다.
서울여대 학생들은 학교 캠퍼스에서도 건물 외벽과 바닥에 '성범죄자 교수 OUT' '서울여대는 룸살롱이 아니다' 등의 문구를 붉은색 래커로 칠하는 등 교내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이에 서울여대 측이 14일 시설물 훼손 행위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거라고 경고하며 대립이 지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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