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원로'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인터뷰]
임기 후반 대통령 힘 빠지는 건 단임제 숙명
신뢰 회복 못하면 임기 단축 개헌 제기될 것
김 여사 특검, 거부권 반복으로 피할 수 없어
당정관계 재정립 위해 친윤 세력 역할 중요
이재명 추가 유죄 판결시 민주당 변화 올 것
담론 없는 정치에 우리 미래 맡길 수 있겠나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윤석열 정부 임기 전반기에 '통치력 부재'가 확연하게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대통령의 통치력이란 시대적 과제(비전) 제시, 국민 일체감 형성, 정책 수립 및 실행, 국가제도 관리, 정치 세력과 인물 관리 능력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대통령의 국정에 대한 이해 부족, 김건희 여사의 영향력, 참모·전문가·원로와의 원활하지 않은 소통 등을 배경으로 꼽았다. 지금처럼 국민 신뢰가 없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내년 봄엔 여권발 '임기 단축 개헌' 요구가 나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청와대, 내각, 정당에서 두루 경험을 쌓은 '보수 원로' 윤 전 장관을 지난 18일 한국일보 본사에서 만나 질문을 던졌다.
-윤석열 정부 전반기를 총평해 주신다면.
"지난 2년 반은 윤 대통령의 '자기 부정' 과정이었습니다. 대선후보 때 내세운 '공정과 상식'이란 정체성을 스스로 파괴했습니다. 둘째, 국가 통치에 대한 이해가 없다 보니 통치 능력이 없음을 보여줬죠. 셋째, 현재와 같은 거대한 전환기엔 대통령은 비전을 제시해 국민 동의를 얻어야 합니다. 비전 실현을 위해선 정책과 제도 관리,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인사 능력이 필요합니다. 이에 대한 좋은 점수를 줄 수 없는데 임기 후반기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임기 후반기엔 신경 써야 할 분야가 있다면요.
"우리나라는 지정학적으로 안보가 중요하고, 민생을 위한 경제도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미국 일변도 외교로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가 소홀해졌어요. 주변 강대국과의 관계는 우리에겐 선택이 아니라 필수의 문제입니다. 남북관계도 잘 관리해야 합니다."
-윤 대통령은 '4대 개혁 완수'를 강조합니다만.
"역대 대통령들도 4대 개혁 과제를 말했습니다.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것은 면밀한 준비가 있어도 어려운 과제라는 뜻입니다. 개혁이 얼마나 지난한 건지 모르니 큰소리부터 치는 겁니다. 유능한 대통령도 임기 절반이 지나면 힘이 빠지기 시작합니다. 5년 단임제 대통령의 숙명입니다. 10%대 지지율로는 통치 행위에 대한 권위를 가질 수 없는데, 개혁이 가능하겠습니까."
-7일 윤 대통령의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은 어떻게 보셨나요.
"여전히 국정을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현실 감각이 없는 대통령이 국민 역량을 하나로 모을 수 있습니까. 대통령 본인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는 것보다 국가 운영 능력을 갖추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야 최선을 다했을 때 성과가 나오는 법이죠."
-야당에선 임기 단축 개헌 얘기도 나옵니다.
"대통령 리더십에 문제가 있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리더십에도 문제가 생겼잖아요. 그런 것들이 쌓여 내년 봄쯤 큰 고비가 있을 겁니다. 우리 정치에서 봄은 항상 시끄러웠습니다. 야당이 움직이면 여당도 고비를 돌파하기 위해 개헌을 포함해 여러 궁리를 할 수 있을 겁니다."
-김 여사에 대한 윤 대통령의 문제의식이 없어 보입니다.
"국민이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죠. 미루어 보건대 대통령의 잠재의식 속에 부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인 것 같아요. 왜 그런지 알 길은 없으나 상식적 수준이 아닌 건 분명해 보입니다.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도 김 여사의 영향력이 미칠 수 있을 텐데, 남은 임기에 대한 걱정이 들 수밖에요."
-명태균 같은 선거 브로커와의 관계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좋은 참모를 써야지 왜 명태균 같은 사람을 씁니까. 정치권 주변에 명씨와 같은 사람이 많아요. 하지만 대선후보라면 자신과 개인적 신뢰가 두터운 사람들로 하여금 이들의 접근을 차단하도록 해야죠. 국정에 대한 이해가 없으니 다른 사람들의 말에 흔들리는 겁니다. 정치 경험이 없는 윤 대통령도 어려움이 있었겠죠. 그러나 대통령이 되겠다고 생각했다면 전문가들을 찾아 조언을 계속 들어야 합니다. 시대적 상황을 묻고 국정 운영의 우선순위가 뭐가 돼야 하는지 묻고 고민해야 합니다. 대통령 자리를 쉽게 생각한 것 같습니다."
-이를 보완해 줄 대통령실 참모들은 어떤가요.
"대통령 비위를 맞추기보다 쓴소리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대통령의 부당한 일을 지적하다 옷을 벗는 것은 참모로서 불명예가 아닙니다. 그런데 뛰어난 지도자 밑에 뛰어난 참모가 있는 법입니다. 중국에서 대표적 참모로 위증을 꼽는데, 가장 뛰어난 왕으로 불리는 당 태종이니까 그를 기용한 겁니다. 위증이 하도 직언을 하니 죽여버리고 싶었다고 하잖아요."
-원로에게 조언을 구하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가장 친한 친구의 아버지(이종찬 광복회장) 충고도 안 듣잖아요. 그런 태도가 대통령을 고립시키는 겁니다. 제가 언론에 '평생 상명하복의 검찰 조직에서 살아온 분이 하루아침에 민주공화국을 통치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취지로 말한 적이 있습니다. 대통령이 그걸 괘씸하게 여겼나 봅니다. 고 윤기중 교수님은 집안 어른이라서 여러 번 뵌 적이 있었는데, 춘부장은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 '윤여준은 만나지 마시라'고 했다는 말을 뒤늦게 들었습니다."
-향후 개각과 대통령실 참모 개편 등 인사는 어떨까요.
"국민이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게 인사입니다. 다른 거 잘해도 인사 한 번 잘못하면 민심은 바로 떠납니다. 윤 대통령은 인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인재 발탁이 쉽지 않을 겁니다.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평가가 나와 있잖아요.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관련해 '화를 잘 낸다' '혼자만 얘기한다'와 같은 소문도 많습니다. 지금 공직 사회는 서로 대통령실에 가지 않으려는 분위기입니다."
-김 여사 특검법은 어떻게 처리해야 합니까.
"김 여사 관련 의혹이 여럿 있고 국민 관심도 높으니 야당도 공세적으로 요구하는 겁니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계속 행사하면서 임기 말까지 간다고 칩시다. 그 후에는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요."
-특검을 할 수밖에 없다는 건가요.
"그럴 겁니다. 국민 정서상 특검으로 해결할 문제냐를 논리적으로 따질 시기는 지났습니다."
-여권에선 특별감찰관과 제2부속실 설치를 해법으로 제시합니다.
"본질적 해결책이 아닙니다. 특감이 김 여사의 언행을 견제할 수 있을지 의문이고, 제2부속실로 대통령 부인이 제약을 받는 것도 아닙니다. 제2부속실에 9명을 둔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는데, 그건 오히려 공적 지위가 없는 대통령 부인의 다양한 분야에 대한 국정 관여를 제도화하는 거예요. 이순자 여사 때도 2명으로 충분했습니다."
-대통령의 리더십 위기 속에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잘하고 있습니까.
"정치인이 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정치에 적응하려고 애쓰는 만큼 가능성은 보입니다. 여당 대표는 야당을 잘 달래기도 해야 합니다. 신축자재(伸縮自在)라는 말이 있습니다. 굽힐 땐 굽혀야 하는데, 그건 국민을 기만하거나 비굴한 게 아니에요. 그런 면에서 한 대표는 더 경험을 쌓아야 합니다."
-윤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말하지만 성과는 없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여당은 입법부로서 정부를 견제해야 하는 동시에 집권당으로서 대통령을 지원해야 하는 이중적 지위를 갖고 있습니다. 대통령과 부딪혀야 할 때도 있지만 어긋나기만 할 수도 없어요. 정권 창출이 목표인 당이 인기 없는 대통령만 따를 수는 없는데, 대통령이 이를 고깝게 여겨선 안 됩니다. 친윤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당정관계에서 완충 역할을 잘해야 합니다. 대통령 편만 드는 게 능사가 아닙니다."
-이 대표 1심 선고 이후 민주당 행보를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예상과 다르게 중형이 나온 이번 선고가 다른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을 겁니다. 만약 다른 재판에서도 유죄가 나온다면 민주당 분위기는 바뀔 수 있어요. 당내 세력 관계 때문이 아니라 민심이 (이 대표를) 용인하기 쉽지 않을 겁니다."
-지난달 이 대표를 만나 '국가 리더십이 흔들릴 때 다수당이 중심을 잡아달라'는 취지의 말을 하셨습니다.
"다수당으로서 국정에 대한 책임을 느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모든 걸 야당 시각으로 보지 말고 국익 차원에서 정부를 도와줄 건 도와줘야 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였다면 민주당에 대한 신뢰는 더 커졌을 겁니다."
-정치 실종 현상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까.
"정치 혐오가 큰 것은 여야 모두의 책임입니다. 국민의 대표로 뽑아줬더니 매일 싸움만 하니 정치와 가장 먼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는 겁니다. 미국에서도 상원의원이 불출마 선언을 하면서 '의회는 없고 당파만 남았다'고 하지 않습니까.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의회 민주주의 제도 자체를 다시 생각하자는 말이 나올 수 있습니다. 우리 정치는 그런 고민은 고사하고 담론 자체가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우리 미래를 맡긴다고 생각하면 끔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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