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 도주·사고 후 미조치 혐의는 무죄
프로포폴 등 상습 투약은 별도 재판 중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마약류에 취한 채 고급 외제차를 몰다 20대 여성을 치어 숨지게 한 이른바 '압구정 롤스로이스' 운전자에게 징역 10년이 확정됐다. 대법원은 그가 사고 후 일부러 도주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는 항소심 판단을 수긍했다.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치사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신모(28)씨 사건에서 일부 혐의를 무죄로 판단하고 징역 10년을 선고한 원심을 20일 확정했다. 대법원은 "원심 판단에 법리 오해나 소송절차상 피고인의 권리를 침해한 잘못이 없다"고 설명했다.
신씨는 지난해 8월 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압구정역 근처에서 차를 몰다가 인도로 돌진, 20대 행인을 들이받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식에서 케타민을 포함한 마약류 7종이 검출됐고, 사건 당일에도 향정신성 약물 투약 후 운전대를 잡은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자는 3개월 뒤 끝내 숨졌다.
사고 직후 신씨의 행동으로 논란은 커졌다. 피해자 몸 위에 떨어진 건물 잔해를 치우던 그는 119구조대와 경찰이 사건 현장에 가까워지자 돌연 자신이 약물 시술을 받고 나온 성형외과로 향했다. 3분 뒤 돌아온 신씨는 자리를 뜬 이유에 대해 "휴대폰을 찾으러 갔었다"고 밝혔다.
검찰은 그가 고의로 현장을 이탈했다고 판단, 위험운전치사 혐의와 약물운전으로 인한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에 더해, 도주치사와 도로교통법상 사고후미조치 혐의를 적용했다. 재판에선 "피해자와 유족에게 단 한 번도 제대로 사과하지 않았다"며 징역 20년을 선고해달라고 요청했다.
1심은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피고인이 사고 직후 운전석에서 휴대폰을 만지는 듯한 모습이 보이고, 당시 다른 시민에 의해 119에 신고가 접수돼 구조대가 도착할 즈음 이탈하기 시작했다"며 신씨 주장은 합리적 근거가 빈약하다고 봤다.
그러나 항소심 판단은 크게 달랐다. 현장 이탈 전후로 신씨에게 별다른 도주 행동이 보이지 않고, 약 기운 탓에 휴대폰을 병원에 두고 왔다고 착각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다. 현장에 돌아와 자신이 운전자임을 인정한 점도 근거로 들었다.
결과적으로 항소심 재판부는 도주치사와 사고후미조치 부분을 무죄로 봐 1심 선고형의 절반인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2심 재판 과정에서 유족과 합의한 점도 유리한 정상으로 고려됐다. 대법원도 이 같은 결론에 문제가 없다고 보고 이날 검찰과 신씨 양측의 상고를 모두 기각했다.
신씨는 2022년 6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57차례에 걸쳐 병원 14곳을 옮겨 다니며 다른 사람의 명의를 도용하는 방식 등으로 프로포폴 등 수면마취제를 상습 투약한 혐의도 드러났다. 이 건은 별도로 기소돼 8월 1심에서 징역 2년이 추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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