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 외나로도 쑥섬
쑥섬은 전남 고흥 외나로도에 딸린 작은 섬이다. 아기자기하게 꾸민 정원과 푸른 바다 풍광이 어우러져 있다. 섬을 독차지 한 듯 오롯이 나만의 여행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쑥섬은 멀지만 차 없이 대중교통으로도 갈 수 있다. 우선 서울에서 고속버스나 시외버스로 고흥공용버스정류장에 도착해 나로도행 농어촌버스(1,000원)나 직행좌석버스(2,000원)로 갈아탄다. 나로도공용터미널에서 15분가량 걸으면 나로도연안여객선터미널에 닿는다. 쑥섬 가는 뱃삯은 입장료를 포함해 8,000원이다. 멀미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바로 코앞이 쑥섬이다. 배에 올라 2분도 안 돼 섬에 도착했다.
쑥섬에는 1500년대 밀양박씨 일가가 처음 입도했고 장흥고씨, 연안명씨가 함께 살았다고 한다. 평온한 호수처럼 보여 봉호라도도 하고, 파시가 열릴 정도로 품질 좋은 쑥이 많이 자라 애도(艾島)라고도 불렀다. 경남 거제 외도와 발음이 비슷해 현재는 행정명칭을 쑥섬으로 변경했다.
평범한 섬마을은 2000년 김상현(교사), 고채훈(약사) 부부를 만나 변화하기 시작했다. 부부는 새해를 맞아 평생 하고 싶은 일을 서로 쪽지에 적어 보여줬는데, 신기하게도 사회복지사업으로 뜻이 같았다. 그동안 사회로부터 받은 혜택을 지역 사회와 나누며 살아가겠다는 신념이 구체화된 장소가 쑥섬이다. 부부의 손길로 정성스럽게 꾸며진 섬은 2016년 일반에 개방됐다.
탐방코스는 선착장에서 출발해 로컬매장, 갈매기카페(탐방로 입구), 헐떡길, 난대원시림, 환희의언덕, 몬당길(야생화길), 별정원(비밀꽃정원), 문학정원과 인연정원, 여자산포바위, 남자산포바위, 신선대, 쑥섬등대, 우끄터리쌍우물, 동백길, 사랑의돌담길을 거쳐 다시 선착장으로 돌아오는 총 3km, 일반적으로 1시간 30분을 잡는다. 느긋하게 걸으며 여유롭게 휴식하고 사진을 찍고 식사까지 해도 3~4시간이면 충분하다. 여행 문의는 김상현 010-8672-9222, 고채훈 010-2504-1991.
배에서 내려 액자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으면 마을과 집이 그림처럼 담긴다. 화장실은 여행자를 위해 개방하는 갈매기카페와 쑥섬 로컬매장을 이용한다. 헐떡길을 오르면 400여 년 만에 개방된 난대 원시림이 모습을 드러낸다. 말 형상의 후박나무, 태풍 매미에 험한 꼴을 당했지만 죽지 않은 육박나무가 인상적이다. 상쾌한 공기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값진 보물이다.
이어 인생사진 포토존이 나타난다. 예시와 설명 덕분에 누구나 멋진 사진을 남길 수 있다. 숲길을 빠져 나오면 가슴이 뻥 뚫리는 환희의 언덕이다. 멀리 소거문도 거문도 손죽도 초도가 보인다. 가까이는 썰물 때만 보이는 ‘쑥섬 인어’와 ‘쑥섬 큰 바위 얼굴’ 형상도 관찰할 수 있다. 몬당길은 ‘아버지의 길’로 불린다. 있는 듯 없는 듯 손을 댄 듯 안댄 듯 자연스러운 길로, 석공이기도 한 쑥섬지기 김상현씨와 부친 김유만씨의 정성이 깃든 탐방로다.
잠시 후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별정원이 등장한다. 사계절 400여 종의 꽃이 피고 지는 정원은 김상현·고채훈 부부가 꽃을 사랑하는 마음과 지역 발전을 위해 소중하게 가꿨다. 칡넝쿨로 뒤덮인 것을 개간해 '비밀꽃정원'을 조성했다.
11월이 중순을 넘겼는데도 다양한 꽃이 여행객을 반갑게 맞는다. 잎겨드랑이에서 나온 꽃줄기 끝에 노랑, 빨강 등 여러 색상의 작은 꽃이 빽빽이 달린 란타나, 붉은 모습이 매혹적인 샐비어, 화려한 트로피컬칸나와 늦가을 코스모스의 향연이 눈부시다. 바닷바람에 춤을 추듯 흔들거리는 은빛 팜파스그라스는 마음을 설레게 한다. 고양이 포토존의 알록달록한 국화는 파란 바다와 어우러져 환상적인 비경을 연출한다. 문학정원 & 인연정원은 쑥섬을 좋아하는 이들의 마음을 팻말에 담아냈다. 꽃과 한 줄로 읽는 책이 조화로운 야외독서실이다.
자연이 만든 석부작과 바위포토존을 지나면 넓고 평평한 여자산포바위가 나타난다. 여자들이 명절이나 보름날 밤에 음식을 싸와서 노래와 춤을 즐겼다는 곳이다. 해발 83m 쑥섬 정상은 남자산포바위다. 에베레스트(8,848m), 백두산(2,750m), 한라산(1,950m)과 별 차이가 없다는 팻발에 웃음이 터진다.
신선대에는 하늘에서 신선이 내려와 절벽 아래 바다와 바람을 느끼며 바둑을 두거나 거문고를 켜고 놀았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흐드러진 보라색 물결의 산부추꽃이 시선을 잡는다. 쑥섬등대(성화등대)는 거문도와 완도를 오가는 선박의 길잡이다. 섬 북쪽 끝 우끄터리쌍우물은 쑥섬 큰애기들이 빨래를 하거나 물을 길으며 정보를 교환하던 장소다.
배우 최불암이 좋아한 동백길에 하나 둘 붉은 꽃이 피어나고 있다. 백년해로가 이루어지는 사랑의 돌담길을 걷고 고양이 벽화를 구경하면 갈매기카페로 되돌아오게 된다. 이쯤 되면 출출할 시간이다. 갈매기카페는 가성비 맛집이다. 다양한 튀김과 반찬이 곁들여진 쑥섬돈가스와 쑥라떼는 예쁜 모양만큼 입이 즐거운 최고의 조합이다. 로컬매장에선 마을 주민이 생산한 특산품을 팔고 있다. ‘쑥섬 안녕’. 아쉬움을 달래며 오롯한 나만을 위한 여행을 마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