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징역형 선고 이래 민주당 친명 인사들의 ‘비상한’ 반응들이 화제다. 이해식 의원은 페이스북에 빗발 속에서 의연히 연설하는 듯한 모습으로 연출된 이 대표 사진을 올렸다. 그리곤 그 사진 위에 마르쿠르 아우렐리우스 ‘명상록’을 인용해 “그는 고귀한 싸움에 당당히 임하는 투사”라며 “이런 사람이야말로 신의 사제요, 신의 종”이라는, 이 대표에게 신성성까지 부여하는 듯한 찬사를 올렸다.
▦ 이 의원의 ‘장중한’ 헌사가 이 대표 혐의와 판결에 대한 완강한 부정 심리를 반영했다면, 최민희 의원은 놀라울 만큼 격렬한 분노를 표출했다고 볼 수 있다. 최 의원은 이 대표 판결 후 민주당 내 비명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관측과 관련해 “(비명계가) 움직이면 죽는다. 제가 당원들과 함께 죽일 것”이라는 뜻밖의 극언을 토해냈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예상 밖의 중형에 격동해 “미친 정권의 미친 판결”이라는 반(反)체제적 비난까지 서슴지 않았다.
▦ 민주당 친명계 의원들의 격한 반응들은 일종의 집단적 심리현상이 아닐까 하는 느낌마저 자아낼 정도다. 엄연한 치명적 현실에 대한 수용자들의 심리적 반응에 관한 이론으로 널리 알려진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분노의 5단계(five stages of grief)’에 따르면, 시한부 선고를 받은 환자의 심리과정은 일단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부정’에서 출발한다. 이 대표 본인이나 친명 인사 등이 판결 이후에도 ‘무죄’를 항변하는 모습과 흡사해 보인다.
▦ 다음은 ‘분노’다. 당사자인 이 대표나, “죽이겠다”고 나선 최 의원의 내면은 어쩌면 방향 잃은 분노에 휩싸여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노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을 서서히 수용하는 단계로 나아간다. 우선 ‘이번만 살려주면 착하게 살게요’하는 식의 타협으로 현실 변화를 모색하려는 심리단계를 거쳐, 그마저 부질없음을 깨달으면 ‘우울’ 단계를 지나 끝내는 지쳐서 현실을 ‘수용’하는 국면에 도달한다. 국민의힘 초선인 김용태 의원은 최근 이 대표와 친명의 격한 반응에 대해 “분노의 5단계 중 초기인 1, 2단계에 와 있는 것 같다”는 촌평을 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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