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침공 1,000일째인 19일(현지시간) 4년 만에 개정한 핵 독트린에 서명했다. 러시아 영토와 주권에 대해 재래식 무기를 이용한 침해가 있을 경우 비핵국가에 핵무기 사용을 허용한 게 골자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핵 공격을 가능케 한 개정이다. 러시아의 새 독트린은 핵전쟁 가능성을 높일 뿐만 아니라 50년 이상 유지돼 온 국제 핵 질서를 와해시킬 수 있는 위험천만한 '핵 치킨게임'이 아닐 수 없다.
푸틴은 우크라이나가 미국이 제공한 사거리 300km의 지대지 미사일 에이태큼스 6발로 러시아 본토를 공격하자 핵무기 사용 문턱을 대폭 낮춘 위협으로 대응했다. 이날 발효된 '핵 억제 분야 국가정책의 기초’, 즉 핵 독트린 내용을 보면 비핵 국가가 핵 보유국 지원을 받아 러시아를 공격할 경우 두 국가의 공동공격으로 간주하고, 러시아와 동맹국의 주권과 영토보전에 중대한 위협을 주는 재래식 무기 공격에도 핵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기존 핵 교리는 비례적 대응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으나 이번 개정으로 우크라이나는 물론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나토 동맹국에 대한 핵 공격 가능성까지 열어둔 셈이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에이태큼스 공격과 관련해 “새 교리에 따라 핵 대응을 보장하는 위협으로 간주할 것"이라며 "우크라이나나 나토 주요시설에 보복할 권리가 있다"고 엄포를 놨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말로만 떠들던 러시아의 핵 위협이 노골화함에 따라 가뜩이나 불평등 비판을 받아온 핵확산방지조약(NPT)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게 됐다. 사실상 비핵 국가에 대한 핵무기 사용 금지를 전제로 미국 러시아 등 5개국에만 핵보유를 인정해온 상황이라 핵 잠재 능력을 갖춘 비핵국가들의 핵개발을 자극할 수 있다. 더욱이 러시아는 핵 대응 동맹국으로 벨라루스만 적시했지만, 군사동맹을 맺고 참전까지 한 북한으로 확장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어 러시아의 핵 위협은 우리 입장에서도 남의 일이 아니다. 비상한 대응이 요구되는 핵 질서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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