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면·아스팔트 등 제거 방식 달라
높은 비용 예상, 착수 시점이 중요
"복원도 중요하지만 소통이 먼저"
"이 정도 규모는 전례가 없긴 해요."
20일 오전 서울 성북구 성신여대 캠퍼스를 둘러본 청소전문업체 대표 양동훈(52)씨가 "예상보다 복구해야 할 곳이 많다"며 이렇게 말했다. 캠퍼스엔 교문부터 아스팔트 도로, 건물 외벽 곳곳에 시위 문구가 적혀 있었다. 내년부터 국제학부에 외국인 남학생 입학을 허용하겠다는 학교를 규탄하는 내용들이다. 학교 측 도면에 따르면, 실내·외를 포함해 캠퍼스 내 여러 색깔의 스프레이가 칠해진 구역은 약 3,305㎡(1,000평). 작업 상황에 따라 변동은 있겠지만, 세 명으로 이뤄진 작업조를 총 다섯 조 투입할 때 복구 기간은 약 1~2개월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양씨는 "훼손 구역의 90% 정도가 석재로 돼 있어 특수 약품 처리가 필요하다"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흡착이 심해져 표면을 갈아내거나 그래도 지워지지 않으면 최후의 수단으로 아예 교체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동덕여대, 성신여대, 서울여대에서 '남녀공학 전환'이나 '교수 성추행 사건' 등을 둘러싸고 스프레이 시위가 잇따랐다. 학사변경 등 중요 안건 논의 과정에서 배제되자 뿔난 학생들이 캠퍼스 곳곳에 형형색색의 스프레이로 항의 문구를 적어 넣은 것이다. 복구 비용만 수십억 원에 달한다는 추산에 학교 측은 학생들에게 손해배상금을 요구한다는 입장이나, 극단적 갈등 상황을 막는 소통 창구가 대학 내에 안착되는 게 먼저라는 목소리가 높다.
물리·화학 작업 병행… 50억은 글쎄
대학들은 시위 과정에서 발생한 시설물 훼손에 대해 배상 책임을 묻겠다며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14일 서울여대는 홈페이지에 경고문을 올리고 "본교 재산을 훼손해 비용이 발생할 경우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경고했다. 동덕여대 역시 15일 홈페이지에 추정 피해 금액을 공개했는데, 이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건물 보수 및 청소 경비는 최소 20억 원에서 최대 50억 원으로 산정됐다. 성신여대는 아직까지 배상 책임과 관련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실제로 캠퍼스 복원에 적지 않은 비용이 들 것으로 예측된다. 스프레이 제거 전용 약물이 없어 다른 도료보다 제거가 어려운 데다 외벽, 도로 등 분사 구역마다 맞춤 작업을 시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양씨는 "석재, 아스팔트, 유리 등 오염 구역마다 제거 방식이 달라진다"면서 "약품 처리를 할 경우 한 구역당 여러 작업이 이뤄져 최소 3일은 걸린다"고 설명했다. 이어 "연마재를 고압으로 분사해 오염된 표면을 긁어 내는 물리적 방법도 필요해 보인다"며 "일반적인 약품 처리에 비해 10배 이상의 비용이 든다"고 덧붙였다.
'신속 복원'하려면 "착수 시점 관건"
학생들의 단체 행동 과정에서 큰 규모의 스프레이 시위가 연달아 발생한 건 이례적이다. 문화재나 예술작품, 공공시설을 고의로 훼손해 메시지를 남기는 '반달리즘(vandalism·고의적 훼손 행위)' 문화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전달할 문구가 명확하게, 장기간, 누구나 볼 수 있는 장소에 전시된다는 점에서 효과적이어서 앞으로 대학가에 확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엄연한 기물 파손 행위라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최항섭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명료한 문구 전달을 선호하는 온라인 세대의 특성이 오프라인에서 반영된 현상 같다"며 "다만 목적이 훌륭해도 수단의 정당성을 잃게 되면 의미가 퇴색될 수 있어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극단적 갈등은 양측의 손실만 키우는 만큼, 근본적으로는 대학 구성원들이 다양하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논의의 장을 만들 필요가 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제껏 대부분의 대학은 대학본부나 재단 선에서 방향성을 결정한 뒤 일방적으로 교수와 학생에게 전달하는 식으로 행정 처리를 해왔다"며 "깊은 갈등으로 치닫기 전에 의사소통 구조와 정책 결정의 과정들을 한 번 더 검토해 시정할 부분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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