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제 후 상속'에서 '상속 후 공제'로
타인의 불법행위로 인한 직무상 재해 사망의 경우, 망인의 퇴직연금을 먼저 상속시킨 뒤 유족연금을 공제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유족연금을 먼저 공제한 뒤 상속분을 계산할 경우 배상금을 받지 못하는 유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1994년 이후 30년 만에 판례가 변경된 건데 대법원은 "피해자인 망인의 상속인들의 권리를 더욱 보호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21일 교통사고로 사망한 A씨의 배우자와 자녀들이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중 자녀들이 일부 패소한 원심 일부를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대학교수 A씨는 2016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A씨 유족들은 가해차량이 가입한 공제사업자인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쟁점은 일실 퇴직연금(피해자가 사망하거나 사고를 당하지 않았더라면 얻을 수 있었던 퇴직금) 상당의 손해배상채권에서 직무상 유족연금을 공제하는 순서와 범위였다. 사학연금법상 교직원이 사망할 경우, 유족연금이 지급된다. 다만 이중 지급을 막기 위해 그만큼의 금액이 퇴직연금에서 공제된다. 이 사건에선 A씨의 배우자만 유족연금을 받았다.
택시회사 측은 종전 판례인 '공제 후 상속' 방식을 주장하며 퇴직연금 부분에 있어서 유족연금을 공제한 후에 지급하겠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유족 측은 퇴직연금 상당의 액수를 배우자와 자녀 각각의 상속 비율에 따라 지급하고 유족연금을 받은 유족에 대해서만 공제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가령 퇴직연금이 7,000만 원이고 배우자가 받은 유족연금이 3,500만 원일 경우, 공제 후 상속설을 따르면 퇴직연금에서 유족연금을 공제한 뒤 남은 3,500만 원을 상속분만큼 배분한다. 이 사건 상속지분을 적용하면 배우자는 1,500만 원, 두 자녀는 각각 1,000만 원을 받는다.
반면, 상속 후 공제설 방식을 택하면 일단 배우자는 3,000만 원을, 자녀들은 각 2,000만 원씩 받는다. 이 경우 유족연금을 받는 배우자는 퇴직연금을 한 푼도 못 받지만 세 명의 가족이 수령하는 퇴직연금 총액은 4,000만 원으로 상속 전 공제(3,500만 원)보다 더 많아진다.
2심 재판부는 종전 판례 방식이 옳다고 봤다. 이 경우, 배우자가 받은 유족연금이 퇴직연금보다 금액이 컸기 때문에 자녀들에게는 상속분이 없단 결론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날 대법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공제 후 상속이라는 종전의 판례를 상속 후 공제로 변경했다. 손실보전의 중복성만 강조해 유족연금의 공제 범위를 넓게 인정하면 가해자 책임을 면제시키는 결과로 이어져 부당하단 취지다. 그러면서 "(공제 후 상속 방식은) 수급권자의 생활안정과 복지향상을 위한 사회보장법률의 목적과 취지가 몰각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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